[경제 에세이] 전봇대가 없는 나라
오명호/HSC 대표
많은 것 중 가장 기억 나는 것은 ‘영국에 전봇대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무인 동력 시스템’을 인류 최초로 개발한 나라에 전기 송수신의 기본 하부구조인 전봇대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분명 내가 살던 집에 전기불이 들어 오는데도 말이다.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널려 있는 전봇대. 그 전봇대가 영국에서는 땅속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을 줄이고 안전을 고려해서 땅속에 묻은 것이다.
그 투자금이 상상을 초월할텐데. 역시 영국은 부자 나라인가 보다. 만약 영국전력주식회사가 투자 대비 수익률을 계산하는 민간 기업이었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18세기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서방 국가들에 본격 도입되면서 기업들이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면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시장에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수급 원칙에 따라 가격과 수량이 자동적으로 조절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유방임 경제 체제 하에서는 초기에 거액의 투자금액이 투여되는 전기 생산 업체, 물류의 기본 하부 구조인 고속도로와 철도 등에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렵다.
철도와 도로, 전기, 통신 등이 국가의 기반 산업이며 국가 경쟁력의 핵심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상당수 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러한 산업과 시설은 공기업이 투자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과는 아주 달리 국가의 경쟁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철도, 전기 생산, 통신 산업 등 대부분을 민간 기업들이 맡고 있다. 사기업 진출이 배제된 분야는 50년대 아이젠 하워 대통령이 건설한 고속도로 정도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을 막론하고 이러한 기간 산업을 관장하고 있는 공기업들의 비효율성 폐단은 심각하다. 80년대 영국의 대처 수상은 공기업들의 고질적인 비효율성과 관련 노조의 전투적인 습성에 염증을 느껴 과감하게 민영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기업의 비효율성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을까. 지금 미국 사회 전체가 갑론을박하고 있는 건강보험 개혁안을 유심히 살펴 보면 해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최근 건보논쟁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철회한 건강보험 개혁안‘퍼블릭 옵션’을 연방상원의 척 슈머 의원과 제이 록펠러 의원이 불씨를 되살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의 주장은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회사(Public Option)’를 만들면 단기적 수익에만 골몰하는 사기업, 곧 기존 건강보험 회사들이 정부 공기업과 경쟁해야 하므로 궁극적으로 보험료가 내려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퍼블릭 옵션이 시행되면 과거의 병력 등을 이유로 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개인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측은 경쟁은 하되 ‘공정한 경쟁여건(level playing field)’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정부와 같은 막강한 힘을 지닌 조직이 보험 회사를 만들면 민간 보험 회사들로서는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기 출발점을 같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퍼블릭 옵션이 성공하려면 ‘공기업은 효율적이어야 하고, 사기업의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된다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어쨋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건강보험 산업을 전적으로 민간 부문에게 맡기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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