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애리조나 기념관-유람선 일몰만찬
호놀룰루에 온지 이틀째 아침도 맑은 날씨였다. 8시경에 ‘로버트 하와이’ 관광버스가 호텔로 왔다. 와이키키에서 서쪽으로 약 45분간 달려 진주만 방문객센터에 데려다 줬다.이 센터는 미국 국립공원 서비스에서 관장하고 있었다. 안내자가 표를 사서 나눠주고, 우리 그룹은 3번째라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온 그룹이 둘이나 있었다. 약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거기에 있는 서점, 박물관, 간이식당 등을 돌아봤다. 앞 정원에 나가니 진주만이 눈앞에 보였다. ‘포드’섬이 보이고 전함정박장도 보였다. 1941년12월7일 일본군이 기습했을 때 여기에 정박하고 있던 전함이 몽땅 침몰 당했다.
드디어 우리 번호를 불렀다. 우선 극장으로 안내해 20분간 진주만 공격에 대한 영화를 보여줬다. 흑백 영화로 내용은 실제 기습당하는 현장을 찍은 영화였다. 극장에서 나오자 자그마한 해군 배에 태워,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애리조나 기념관으로 데려다줬다.
기념관은 침몰한 미 해군전함 ‘애리조나’ 위에 다리를 놓고 지붕을 덮은 곳이었다. 그 건물의 길이는 184피트라고 했다. 건물 저쪽 끝에 전몰장병의 전당이 있었다. 대리석 벽에는 1177명의 이름이 새겨있었다. 1941년12월7일 아침 애리조나 전함에 타고 있던 장병들이다.
그날 일요일, 아침 8시10분에 1760파운드짜리 폭탄이 갑판에 떨어져, 철판을 뚫고 들어가, 선두에 있는 탄약고를 폭파했다. 9분 이내에 전함이 침몰했고, 1177명의 승무원도 같이 침몰했다.
그중 불과 300구의 시체를 찾아냈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화장된 셈이다. 미 해군 전함 애리조나가 1177명 전몰장병의 최종 안식처가 됐다. 그날 생존한 장병 중에도 나중에 죽어서 전우들과 같이 있게 유해를 그곳에 안장해 달라고 한 사람은 그렇게 해줬다고 했다. 물속을 들여다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진주만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호놀룰루 시내관광을 시켜줬다. ‘아이오라니’ 궁전 (1882년에 건축한 하와이의 최종 두 왕이 살던 궁전), ‘카메하메하’ 왕(1795-1819) 조상, 주 의사당, 펀치볼 국립묘지 등을 구경했다. 12시경에 호텔로 돌아왔다.
오후 4시30분에 ‘로버트 하와이’ 관광버스가 호텔에 와 유람선 일몰만찬장으로 데리고 갔다. 운전수 외에 남녀 두 사람이 안내자로 왔다. 남자는 사모아에서 왔다고 하고, 여러 가지 농담으로 관광객을 웃겼다. 부두에 도착하니 훌라 치마를 입은 젊은 하와이 여자 둘이 나와 반가이 맞아줬다.
‘아리카이’ 유람선은 옛날 폴리네시아 탐험가들이 타고 거친 바다를 수천마일이나 항행한 ‘와아카우루라’란 배를 본 따 만든 배라고 했다. 선체가 이중으로 된 안전한 배라고 했다.
배에 올라가니 밴드가 하와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음료수를 갖다 줬다. 버스에서 안내한 두 사람도 여기서 일하는 종업원이었다. 저녁은 뷔페식이었다. 줄로 서서 차례를 가다렸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남녀 종업원들이 노래와 춤으로 관광객을 환영했다.
밴드 앞에는 자그마한 춤추는 마루가 있었다. ‘차차’ 노래가 나오자 우리 부부는 나가서 춤을 췄다. 그 다음엔 스윙 댄스와 일랙트릭 슬라이드 라인 댄스를 췄다. 유람선은 와이키키 해안을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해안에 있는 호텔과 다른 건물이 보였다.
위층 갑판에 올라가 멀리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일몰을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무척 아름다운 풍경이었겠지만 우리 부부는 춤추느라고 일몰 구경을 놓쳤다. 아리카이 배에서 저녁을 먹고, 춤을 추며 재미있는 저녁시간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 거기서 찍은 사진 두 장을 샀다. 지금도 가끔 그 사진을 들여다 보면 추억이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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