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에세이] 아인슈타인의 정신장애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박사는 주로 20세기 초반에 활약한 물리학자인데 세기적인 천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독일에서 출생하여 취리히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스위스 특허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여가를 이용해 기존물리학계를 뒤흔드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것이 바로 ‘상대성 이론’이었고 그 결과 아인슈타인은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증가하자 그는 1933년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5년부터 사망할 때가지 20년간 프린스턴 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근래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그리고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그는 어려서부터 외톨이로 외롭게 자랐으며 2,3 세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7살까지도 같은 문장을 강박적으로 반복했다. 어려서 일상적인 대화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남들과 어울리는 경우 아주 어색하게 굴어서 지금 말로 표현하자면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그래서 한 때 지진아로 간주됐다. 그래도 극도의 지성이 필요한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특수 분야에 몰입했다. 음악에서도 일생 바이올린 연주에 상당한 솜씨를 보였다.
많은 아스퍼거 장애자들과 같이 아인슈타인은 창조적인 재능을 나타냈다. 이런 장애자들은 보통 고도의 집중력과 일 중독증 같은 양상을 보인다.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며칠 간 식음을 전폐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물을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체를 본 후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은 세부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전체로 발전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그는 전형적인 ‘멍청한 교수’같이 굴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을 정신 없이 관찰하다가 도랑에 빠지는 학자처럼. 그는 열쇠 같이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용품을 잃기 예사였는데 일단 어떤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주위에서 일어나는 만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언젠가 한번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사회정의나 사회적 책무에 대해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의 만나고 모임에 참석하려고 직접 접촉하려는 의도는 괴팍할 정도로 결핍되어 있다. 나는 진정으로 외로운 개인 여행가며 내 국가, 내 집, 내 가족이나 내 친구들에게 진정으로 소속되어 본 적이 없다. 이들과의 가까운 연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독했으며 항상 거리감을 지녀왔다.”
‘아스퍼거 장애’의 한 특징은 사회적 교류나 연대에 큰 지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일생을 통해 ‘아스퍼거 장애’에서 대체로 결핍되어있는 유머를 가끔 보인 점을 들어, 그가 이 장애가 있던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유석(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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