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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박물관 산책-80] 모리스-주멜 저택(Morris-Jumel Mansion)…독립전쟁의 흔적 그대로 간직

영국군 대령 로저 모리스가 건축…군사 요충지로 치열한 전투 벌여

모리스-주멜 저택은 맨해튼 북서쪽에 있다. 뉴욕시와 뉴저지주를 연결하는 조지워싱턴브리지 동단 남쪽 언덕 위다.

이 저택은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11년 전인 1763년 영국 육군 대령 로저 모리스가 지었다. 이후 1810년 프랑스에서 이민온 부호 스티브 주멜이 구입해 살았기 때문에 ‘모리스-주멜 저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모리스-주멜 저택은 1776년 9월 맨해튼 할렘하이츠에서 벌어진 애국군과 영국군 사이의 전투에서 뺏고 빼앗기는 목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할렘하이츠 전투에서 영국군은 보스턴과 롱아일랜드 전투(일명 브루클린하이츠 전투)에서 승리한 파죽의 기세를 몰아 애국군을 압박했다.

브루클린서 승리한 영국군은 맨해튼 북쪽으로 쫓기던 조지 워싱턴 장군 지휘의 애국군을 추격해 이스트리버를 도강한 뒤 5000여명의 육군과 독일용병(헤시안 병정·독일 헤시안 지역 출신이 대부분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공격했다.

이에 대항하는 애국군은 육군과 민병대(밀리샤)를 포함해 1800여명을 내세워 모리스-주멜 저택(당시에는 130에이커 넓이의 대장원)이 있는 높은 언덕 위에 방어진을 쳤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큰 전술적 실수를 한다. 민병대가 다수인 애국군을 얕잡아 본 영국군은 공격을 가할 때 여우 사냥을 하는 것처럼 나팔을 불면서 “Gone Away(멀리 가라)”라는 함성을 질러댔고, 이것은 졸지에 ‘여우’가 된 애국군의 분기탱천 결사 항전을 불러 결국 패하고 말았다. (영국군은 390여명, 애국군은 130여명이 사상했다.)

애국군은 할렘하이츠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대륙 군대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심을 떨치게 됐는데, 후세에 일부 역사가들은 워싱턴 장군이 평소 여우 사냥을 즐겼기 때문에 영국군의 함성을 듣고 예상 진격로에 뛰어난 저격수들을 집중 배치해 기습을 가함으로써 승리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독립전쟁이 끝난 뒤 워싱턴 장군은 모리스-주멜 저택에서 미 합중국 건국의 핵심 인물들인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존 퀸시 애덤스 등과 전후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후 이 집은 주멜 소유의 별장, 대법원 건물 등으로 복잡한 소유권 이전을 거쳐 1903년에 뉴욕시가 매입했고, 1960년대 국가사적지 지정과 함께 비영리단체가 위임을 맡아 운영해 오고 있다.

모리스-주멜 저택은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드리아 팰라디오가 일가를 이룬 좌우대칭을 특징으로 하는 팰라디안 양식의 2층 주택이다. (미국 대통령의 공식 관저인 백악관 등 미국의 주요 건물 상당수가 이 팰라디안 양식이다)

1층에는 주멜의 부인인 엘리자 주멜(남편이 죽은 뒤 부통령을 지낸 애런 버와 재혼해 이 집에 거주. 일설에 매춘부 출신이라는 설도 있음)이 살던 19세기 초반 미국 대부호의 집안 모습을 전시해 놓고 있다.

건축학적으로 그리스 신전에서 보이는 고아한 문양(팰라디안 양식은 본래 그리스 신전 건축양식에서 기원)의 내부장식과 함께 유럽풍의 호화 가구 등이 옛날 모습대로 전시돼 있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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