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또 다른 모습···'자본주의 성자' 별명, 그 이면에는 협상 거부 냉엄함이
투자 조건 일방적 결정…딜 자체를 허락 안해
CEO가족 주식도 매각금지…무능한 경영진엔 '암살자'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 '따뜻한 자본가' '자본주의 성자'….
그의 별명에는 성공에 대한 찬사가 짙게 배어 있다. 수백억 달러를 자선사업에 선뜻 내놓은 인간에 대한 숭배도 엿보인다.
버크셔해서웨이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5월이면 네브래스카 오마하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버핏을 찬미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성지순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와 동갑내기인 조지 소로스가 '헤지펀드 귀재'라는 별명과 함께 '환투기 세력' '부다페스트의 땅귀신' 등 유쾌하지 않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버핏의 투자나 경영 과정을 들여다 보면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버핏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2008년 10월 골드먼삭스에 50억달러를 투자했다. 각종 옵션 등 안전장치가 곁들여진 계약이었다.
버핏이 금융위기 와중인 계약 당시에 옵션을 행사해도 적잖은 이익을 챙길 수 있을 정도였다.
이면 계약서 요구는 필수
버핏의 요구사항은 하나 더 있었다. 이면계약이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골드먼삭스 지분을 처분하기 전에 경영진과 가족은 골드먼삭스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버핏은 이 조건을 내놓으며 4시간 말미를 줬다.
이는 버핏이 적잖은 지분을 사들일 때마다 해당 기업의 경영진에 내놓는 필수 요구 사항이다.
당시 골드먼삭스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데이비드 비니어는 "버핏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의 하염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며 "버핏은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군주 같았다"고 말했다.
골드먼삭스 경영진은 즉시 버핏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최고경영자(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버핏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서의 말은 차분하면서 냉담했다. 그는 "미안하다. 미스터 버핏이 자리에 없다. 방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 골드먼삭스는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골드먼삭스가 제2의 리먼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월스트리트에 파다했다.
버핏은 손자들과 즐거운 점심을 마친 뒤에야 골드먼삭스에 전화를 걸었다. 골드먼삭스 CFO인 비니어는 "통화가 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50억 달러 투자가 성사됐다. 100% 버핏의 요구가 관철된 것은 물론이다.
무능한 경영진에겐 조용한 암살자
버핏이 경영진과 그 가족들의 주식 매각을 금지하는 이면계약을 요구한 데는 '살로먼브러더스 악몽'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채권전문 투자은행인 살로먼브러더스 지분을 사들였다.
그 시절 살로먼은 글로벌 채권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였다. 정상급 투자은행의 최대 리스크는 내부자의 오만과 방만이라는 말이 있다.
91년 살로먼은 연방 재무부 채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담합행위를 저질러 궁지에 몰렸다.
버핏이 구원투수로 직접 경영에 뛰어들기 전후에 살로먼 임원들은 이면에서 보유 지분을 처분하기 바빴다. 버핏은 "침몰 직전의 선상 풍경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살로먼 핵심 경영진 20여 명을 한순간에 내쳤다.
구조조정을 단행해 회사를 안정시켰다. 98년 보험회사인 트레블러스그룹에 매각했다.
주당 38달러에 사들인 주식을 81달러씩 받고 팔아치웠다. 얼핏 보면 버핏이 두 배 이상 수익을 챙긴 셈이다.
버핏은 '살로먼 롤러코스트'라고 말했다. 투자한 돈을 다 날릴 수 있는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났다는 얘기다.
살로먼브러더스 사태를 거치면서 버핏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에 대한 혐오가 더욱 강해졌다. 그는 '스톡옵션을 받은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그는 돈 밝히는 전문 경영자를 싫어하기로 유명하다.
"돈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경영자를 규정하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에서 그가 CEO로서 받는 연봉이 10만달러에 그친 이유다.
버핏의 경영진 해고는 조용한 암살과 같다. 그는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처럼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요란한 마찰음을 내지 않는다. 조용하게 무능한 경영진을 해고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98년 코카콜라 더글러스 이베스터 해임건이다. 버핏은 이베스터가 사내 파벌다툼에 휘말려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사회에서 이베스터를 압박해 스스로 물러나도록 했다.
대신 버핏은 제대로 경영하는 CEO에게 과분할 정도로 자율권을 주기로 유명하다.
조종사들 대량 해고
버핏은 인정 많은 CEO로 얘기된다. 섬유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1962년에 사들여 보험회사 등을 인수해 지배하는 투자회사 겸 지주회사로 바꿨다.
기존 섬유 부문을 없애지 않았다. 85년까지 23년 동안 유지했다. 정리해고를 최대한 자제했다. 툭하면 적자를 내는 사업 부문을 20년 넘게 유지하면서 버핏은 '돈 되지 않을 사업의 속성'을 체감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그 결과는 이른바 '조종사 살육'이다.
버핏은 98년 네트제츠(Netjets)라는 항공사를 사들였다. 기업인 등에게 콘도처럼 회원권을 팔고 대신 여객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다.
버핏은 세계 기업인들이 많이 이용할 것으로 보고 네트제츠를 인수했다. 하지만 조종사 파업과 방만한 운영 등으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버핏이 자주 하는 말처럼 최고 미녀인 줄 알았는데 자고 나니 아니었던 셈이다.
버핏은 조종사 300여명을 정리해고하는 강수를 뒀다. 2006년 버핏이 투자자에게 띄운 서신에서 "네트제츠 수익이 98년 인수 이후 다섯 배 이상 불어났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버핏의 전기작가인 앨리스 슈뢰더는 "버핏의 현명함이나 인자함은 냉정함 때문에 빛을 더욱 발한다"며 "그의 돈이 들어간 회사의 임직원들은 그의 싸늘함이 표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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