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데이타베이스 해결사' 문송천 교수 "힘들때 받은 도움…돌려줘야죠"
방학마다 기술 자문하러 저개발국 방문
죽을고비 여러번…'지식전달 사업' 보람
이런 긴 설명이 필요한 문송천 KAIST 교수는 결코 체육학 박사가 아니다. 그의 달리기 1m에 10원씩 총 42만1950원을 성금으로 모으기도 무려 20여차례. 이렇게 모은 성금은 아프리카 난민돕기에 희사된다.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의외인 한국 전산학 박사 1호다. 전공은 데이타베이스.
달리기와 데이타베이스가 너무 안어울리지만 나름 달리기와 데이타베이스는 관계가 있다.
'1호 박사'와는 다르게 문교수에게 붙은 다른 별칭은 '데이타베이스의 마지막 해결사'다. 한국만 해도 난다긴다하는 전문가들과 전공 교수들이 많이 있겠지만 가장 경험도 많고 해결도 많이 한 최고수로 불리운다.
77년부터 3년간 미국에서 공부한 것을 빼고는 한국에서만 살았고 이미 28명의 박사를 배출한 왕박사다.
그가 중학생이던 '빈국 한국'은 나라자체가 진짜 먹을 것이 부족해서 쩔쩔매던 때다. 이런 시절 현실타개를 공부로 밖에 해결할 수 없었던 것도 문교수의 과거다.
"사실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공부를 잘한 것도 운이고 장학금 혜택을 받아 석박사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죠."
이렇게 탄탄대로를 걷던 문교수가 어느날 한가지 결심을 했다. 다름아닌 만40세가 되던 날부터 1년에 한가지씩 사회환원을 하겠다는 것.
1년에 한가지씩 사회환원을 하는 것도 좋다. 월급의 일부는 기부하면 사회환원은 어찌보면 쉽다. 부자들은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이지 환원'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날 문교수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의 프로그램을 알게됐다. 제3세계 국가에 지원을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인류 문명의 혜택을 나눠주는 지식의 전달사업이다.
코이카는 오지나 분쟁지역의 국가에 문교수를 파견한다. 문교수가 한국에서 데이타베이스의 해결사이듯 그들 저개발국에게는 문교수의 지식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시작한 그의 여행은 대개 방학중 최소 몇주간이다. 워낙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체력은 필수. 유도 유단자지만 체력은 중요하다.
체력이 오늘의 마라톤 완주하고도 관계가 있다.
"여름방학중의 파견은 어떻게 보면 과거로의 여행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없을때 외국에서 고문단이나 기술자들이 와서 우릴 도왔던 것을 기억하시죠. 바로 그런 역할을 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로 가서 과거의 우리 자신을 돕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지와 분쟁지역을 방문하다보니 문교수에겐 에피소드도 많다.
39세땐 당시 미수교국인 니카라과에 파견됐다가 멕시코 대사관의 도움으로 당초 4주에서 1주일 앞당겨 탈출해서 북한 요원들의 납치기도에서 벗어났던 일. 성경에나 나오는 사마리아인을 위해서 팔레스타인의 웨스트뱅크에서 강의했던 일. 매번 풍토병 예방주사를 맞고 가지만 케냐에선 말라리아에 걸린 일.
"봉사를 위해서 체력을 길러야 했습니다. 원래 강골이었는데도 제3세계에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선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저개발국은 데이타베이스를 통해서 인구 센서스를 국책사업으로 한다고 한다. 국가 전산망 플랜을 짜주는 것은 여러번 거친 일이다. 데이타베이스는 어느 나라나 문명과 컴퓨터가 있으면 사용해야 하는 일이니 문교수 입장에선 어디나 도울 수 있다. 이렇게 다닌 나라가 무려 70여개국.
코이카에선 매년 이런 과학자를 선발하여 보내려고 공모했지만 문교수말고는 응모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예 공모를 없애고 문교수에게만 의뢰하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과학자에게 '기회'는 없었을까.
문교수는 시카고대 샴페인 유학시절 현재 MS의 총괄 기술중역으로 활약중인 동기생 짐 그레이와 클라우드 데이타베이스에 대해서 논의한 적이 있고 1995년엔 MS에서 제안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게 기회였는지 모르지만 문교수는 지금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잠을 줄여가면서 연구하고 달리기하는 현재의 삶을 즐긴다.
"봉사를 하고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은 서로 보면 아나봅니다. 봉사하는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더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문교수는 최근 열렸던 LA마라톤에 참가 그의 '달리는 삶'이 한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장병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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