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人] 개국 3주년 JBC '생방송 오늘' 진행 박혜란씨
잡지 모델로 데뷔 탤런트 출신…음반 기획자와 결혼 후 미국행엄마·아내·방송인·학원 대표…1인4역 수퍼맘 "바쁘지만 행복"
검색 사이트를 살펴보니 ‘박혜란 164cm, 44kg’이다. 15년 전 자료다.
“저는 마르고 예쁘기만 했던 옛 박혜란씨 보다 통통하고 변함없는 미모에 연륜이 느껴지는 지금 모습이 훨씬 좋은 것 같네요.”
돌아온 답은 목젖이 보일 듯 ‘깔깔깔’ 하는 웃음소리. 시작부터 상큼하다.
16세 때 잡지 '여학생' 전속 모델로 데뷔한 스타 탤런트 출신. 연예.방송 경력 30년.
1983년 삼성전자의 첫 전속 모델 (3번째 전속모델이 고 최진실씨였다)로 시작해 영화 6편 드라마 200여회 연극 100여회 음악프로 시사교양프로 MC를 6년 넘게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20대 여자 탤런트 겸 진행자가 TV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1990년대 중반이었는데 묻기도 전에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왔죠 뭐"란다.
'뭐가 이렇게 싱거워' 그래서 더 캐물었다.
"신랑하고 동갑에 연애만 6년 넘게 했어요. 원래 음악 하던 사람이라 이야기도 잘 통하고 미국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좀 트인 사람이었요. 웬만한 짜증은 응석으로 받아 넘겨주는 통 큰 사람이었죠."
'통 크게' 받아주면 한국 연예계 생활도 이해해 줄 텐데…. 특히 남편(케네스 김/현 CG엔터테인먼트 대표)은 가수 장혜진 김민우 등 음반을 기획하면서 한국에서 제법 알려진 재미교포 음반 프로듀서였으니 준연예인이나 다름없었는데.
"96년쯤인가 한국 병역법이 바뀐 거예요. 미국 영주권자가 한국에 장기간 체류하면 바로 입대 영장이 나오게 바뀐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남편이 그 대상에 딱 해당된 겁니다. 군대 가긴 늦은 나이고…다시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한국 활동을 접고 미국 가는 게 가능하겠냐 니가 함께 갔으면 좋겠다. 결혼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너무 시원한 답에 좀 긁어보고 싶었다.
"결혼하고 미국행 솔직히 후회한 적도 있죠?"
"처음엔 좀 있었어요. 경쟁하던 친구들 또 바로 밑 후배 이런 애들이 잘 나갈 때…."
"잘 나갈 때 친구라면?"
"'여학생' 잡지에 저 다음 모델이 혜수(김혜수)였어요. 희애(김희애)하고 인화(전인화)도 친하죠."
박씨는 지금 남편이 운영하는 CG엔터테인먼트 산하에 연기학원을 운영하며 꿈을 이어가고 있다.
"제자들이 한 70여명 되죠.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당연히 참여하고 싶어요. 아직도 풀지못한 제 연기의 숙제같은 부분도 있고…제 나이 대에 맞는 또 미국생활이 녹아있는 그런 역할이면 제자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좀 더 긁고 싶어졌다. 데뷔 초 박혜란이란 탤런트에겐 '까칠하다'는 선입견이 붙었다. (물론 경력이 쌓이면서 다재다능한 재목으로 통했지만) '까칠했던 과거'를 물었다.
"제가 좀 까칠하게 굴었던 건 맞아요. 교육자이신 엄한 아버지 밑에서 매니저도 없이 일하다 보니 나름 자기 컨트롤 하는 방법이 '까칠'로 표출됐다고 할까요."
(방송국 오디션 후에 모 PD의 차에 실려 납치(?)될 뻔한 사연도 들려줬다. 당시로선 하늘 같았을 PD에게 욕을 퍼부었고 한강 다리에서 내렸단다.)
아들 둘이 말은 잘 듣느냐고 물어봤다.
"셋 중에 제일 큰 아들이 제일 말을 안들어요."
(아들만 둘이면 남편이 제일 큰 아들이라며 웃는다.)
"작은 애들 둘은 한번만 흘겨 봐도 '얼음'이 돼서 내가 '땡' 해줘야 움직이는데. 큰 아들은 하지 말라고 뭐라고 하면 '메롱'하고 도망갑니다."
자랑인지 푸념인지 분간은 안 갔지만 어쨌든 일상은 행복해 보였다.
3년간의 중앙방송 JBC 진행자 생활로 화제를 돌렸다. 자신의 이름이 걸린 오픈된 직업이라 불편할 것도 많지 않을까.
"한번은 어떤 잔치에 갔는데 애기들도 있고 해서 가방으로 미리 자리를 잡았더랬죠. 근데 그 자리에 다른 가족이 앉아 있길래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자리를 미리…'라고 말씀 드렸더니 대뜸 '박혜란씨 방송에서는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이런 이야기가 날아오는 거예요. 머쓱해서 자리를 양보해 드렸는데 다음날 인터넷에 악플이 달리는 거 있죠. 한동안 정말 속상했어요."
유명인이다 보니 루머 같은 거에 시달린 적도 있을것 같았다.
"있었죠. 나중에 안 건데 제 남편 나이가 환갑으로 둔갑해 있고 아이도 있고 뭐 한국에서 도망 온 것처럼 소문이 났더라고요. 어이가 없었는데 LA한인사회가 좁은 탓에 살았죠. 소문이 금방 나는 반면에 아닌 건 곧 오해가 풀리죠."
아직 방송을 놓지 못하는 것은 뿌듯하고 따뜻한 기억들 때문이란다.
"어떤 분이 가수 배호씨 노래를 신청했어요. 오전 방송이라 색깔이 좀 안 맞았는데… 일단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계속 같은 분이 배호씨 노래나 흘러간 옛 노래를 신청하시는 거예요. 제가 방송 끝나고 전화를 했어요. 할아버지가 받으셨는데 '신청한 노래를 카셋트로 녹음하고 있다'고 하시데요. 그 할아버지께서 심한 당뇨 때문에 시력을 잃으셔서 TV도 못 보시고 라디오와 카세트 테이프가 유일한 친구라는 겁니다. 저도 부모님 계시고 한데 좀 속이 짠 하더군요."
-그랬군요. 도와드릴 방법이 있었나요.
"제가 가지고 있는 노래 파일에 회사 노래 파일을 합쳐서 흘러간 옛 노래를 모았어요. 그걸 CD로 구워서 제가 그쪽(세리토스)으로 가는 길에 집으로 전해 드린 적이 있어요."
방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청취자와의 소통'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청취자에게 CD를 만들어 갖다 드린 것도 소통의 일부냐고 물었다.
"소통이기도 하고요 또 우리 방송을 제 프로그램을 들어주시는 분 또 불편하신 그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싶더군요. 이 기사 보고 너도나도 만들어달라고 하면 곤란한데…."(웃음)
에피소드도 많았다.
"게스트로 들어온 분 때문에 혼난 적이 있어요. 다이어트에 관한 거였는데. 60대 여성분이 전화 상담이 왔죠. 근데 게스트 분이 대뜸 '60대 여성이 무슨 다이어트냐'고 말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방송 후에 다시 전화 드려서 잘 해결됐죠. 그 분 지금은 뭐 만들어서 저한테 갖다 주시고 아주 친해졌어요."
박혜란씨의 방송을 들으면 항상 활력이 느껴진다. 그 에너지의 근원이 뭐냐고 물었다.
"에너지의 근원은… '내일'입니다. 내일을 보고 있으면 제 생활도 빛이 나는 거 같아요."
뜬금없이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그는 엄마 아내 방송인 연기학원 대표까지 1인4역의 수퍼맘이다)
"바쁘긴 한데 행복하죠. 친구같은 남편 있고 엄마가 눈길 한번 흘기면 동상 걸리는(웃음) 아들 둘 그리고 방송도 하고 연기하는 제자도 있고 이 정도면 복도 '대복' 아닌가 싶네요."
못다한 연기의 꿈도 펴고 이민자의 애환도 담긴 드라마에 박혜란씨가 농익은 연기를 펼치는 기회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난 사람 = 천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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