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 야구 선수의 분신 야구 배트 (1)
야구 글러브와 더불어 바늘에 실 가듯 붙어 다니는 것이 야구공과 배트이다. 이번에는 야구 배트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지금 60대를 눈앞에 둔 야구팬이나 60대 중반인 팬들은 어렸을 적에 동네에서 야구 시합을 할 때면 두꺼운 시멘트 부대 종이를 접어 글로브를 만들고 굵은 나무를 깎아서 방망이로 쓰던가 아니면 어머니 몰래 다듬이 방망이를 가지고 나와 놀다가 어머니한테 들켜 혼이 나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이 때 쓰던 공은 물론 말랑말랑한 고무공이었다. 그 당시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있으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시절이다.
거기다가 야구 배트까지 가지고 있다면 대우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글러브 한 번 빌려 써보려면 온갖 아양을 떨거나 사탕이나 딱지, 유리구슬을 주던가 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야구 배트를 전문으로 만드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미군들이 쓰던 것을 고물상에서 사서 써야만 했었다.
이름도 홍키 빠따(本球-혼큐Bat), 일본말인데 본 경기에서 쓰는 배트라는 뜻이다. 서울에서는 홍키, 부산 지역에서는 혼큐라고 일본 발음 그대로 썼었다.
왜 혼큐를 홍키라고 발음했는지는 아직도 못 푼 숙제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는 이 말이 영어인줄만 알았었다. 왜냐하면 글러브며 야구공, 배트가 전부 미제(美製-Made in U.S.A)였기 때문이다.
자연히 경식(硬式)야구공은 홍키 공이라고 불리었고 대단히 비쌀 뿐 아니라 고등학교 선수 이상 실업 팀 선수들만 사용하는 줄로만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힘 좋고 체격 좋은 미군들이 쓰던 장비들이라, 당시는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이라 어린이들이 쓰기에는 힘에 겨울 수밖에 없고 값비싼 물건들이라 갖고만 싶었던 장비였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값이 보다 싼 소프트볼 배트를 구해다가 길이를 자기 키에 맞춰 톱으로 밑 부분을 잘라 내어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 해서 킹(King)이라는 상표의 배트와 영등포 어딘가에서 깎아 만든 양(Yang)이라는 배트가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내공업식으로 만들던 제품이라 모양만 야구배트이지 쉽게 부러지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비싸게 산 배트를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철물점에 가서 제일 작은 못을 사다가 조심스럽게 박아서 써야만 했다.
나무 배트는 결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구입할 때 나뭇결이 고르고 작은 옹이라도 있는 것은 고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배팅을 할 때는 상표가 위로 가도록 해서 쳐야만 배트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다.
지금은 프로선수들이 사용하는 배트가 맞춤형이지만 옛날에는 배트의 길이만 정확할 뿐 무게는 별로 신경을 써서 만들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에게 맞는 무게의 배트를 만들려면 녹로(??) 공장에 가서 배트 끝을 컵 모양으로 깎아 내어 배트의 무게를 가볍게 해서 자신에게 맞춰 쓰곤 했었다.
이 이야기가 60년 대 한국 야구 배트의 초창기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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