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세계 초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나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담았죠"
6일 LA 디즈니홀서 연주
북한 출신 어머니 삶에 경의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34·사진)에게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비평가 안소니 토마시니가 보낸 찬사다. 긴 머리 대신, 숏 커트, 요란한 이브닝 드레스가 아니라 수수한 연주복이 고씨의 트레이드 마크다.
존 아담스, 엘리엇 카터 등 현대 작곡가들의 곡을 즐겨 연주해 진지한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씨는 시카고 인근에서 태어난 2세다.
“한국말도 잘 못하지만, 한인타운의 식당과 사우나는 종종 간다”는 고씨가 신바람이 나있다. 오는 6일 오후 7시 LA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무궁화(Mugunghwa: Rose of Sharon)’를 세계 초연하기 때문이다.
합창단 LA마스터 코럴이 주최하는 이 콘서트는 ‘한국 이야기(Stories From Korea)’를 주제로 열린다. 이날 프로그램은 ‘무궁화’ 외에도 ‘메나리’ ‘한강수 타령’ ‘경복궁 타령’’달아 달아 밝은 달아’’아리랑 판타지’ 등으로 꾸며진다.
시카고 인근 글렌엘린에서 태어난 제니퍼 고는 오벌린칼리지 영문과 졸업 후 커티스음대에서 제이미 라레도 교수를 사사했다. 11세 때 시카고 심포니와 ‘파가니니 콘체르토’를 협연하며 데뷔했으며 199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맨해튼 워싱턴하이츠에 사는 고씨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1727년 제작 ‘엑스 그루미오 엑스 제너럴 뒤퐁 스트라디바리’다.
-‘무궁화’를 세계 초연하게 된 소감은.
“콘서트 전체가 한국을 위한 행사라는 점이 무척 신난다. 한인들이 우리의 유산과 뮤지션들을 위한 축제를 마침내 열게 됐다! LA 디즈니홀에서 LA마스터코랄, 지휘자 그랜트 거숀과 함께 ‘무궁화’를 초연할 수 있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다.”
-마크 그레이와 작업하게된 경위는.
“작곡가 존 아담스(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중국의 닉슨’ 작곡)를 통해 마크를 만났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마크를 다시 마주친 다음부터 ‘무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크가 보내준 악보와 레코드를 들으니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제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나이에 왔다. 38선 이북 황해도 청단에서 태어나신 엄마는 내 삶의 강한 힘이었기에 엄마 삶의 여정을 탐구하고 경축할 수 있으며,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나 자신의 유산을 탐구하고 싶었다.”
-‘무궁화’는 어떤 곡인가.
“’무궁화’는 한국전쟁 때 이산가족이 된 한 남성 김남수씨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쓰여진 곡이다. ‘무궁화’는 우리 부모 세대 모두의 경험에 관한 것이자, 나 같은 2세들이 그들의 여정을 이해하는 것에 관한 곡이다. 우리 부모님이 극심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셨다면, 나도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무궁화’는 우리를 위한 세상을 만들기위해 얼마나 큰 역경을 이겨내셨는가에 관한 작품이다.”
-미국에서 태어났다. 자신에게 ‘한국’은 무엇인가.
“한국은 나 자신이다. 부모님의 고생에 무척 감사드린다. 일리노이주에서 자랄 때 나도 편견과 무지로 인해 힘들었지만, 엄마의 삶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쌀 한줌을 얻기 위해 구걸하셔야 했다. 이후 주머니에 30달러를 갖고 미국에 유학 오셔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교수가 되셨다. (*편집자 주: 제니퍼 고의 엄마 거트루드 순자 이 고씨는 현재 일리노이주 도미니칸대학교의 도서정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엄마의 고생 덕에 내가 지금 특혜를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음악가를 만드는데 3대가 걸린다는 말이 있다. 제 1세대는 가난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2세대는 교육해야 한다. 그런 후 3세대에 가서야 음악가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1세대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들게 일하셨고, 내가 제 2세대에서 뮤지션이 될 수 있었다.”
-자랄 때 인종적 다양성이 있었나.
“당시 우리 동네는 인종적으로 다양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한식을 먹으면서 자랐으며, 부모님을 통해 한국에 관한 것을 배웠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한국에 가질 못했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고생하셨고, 엄마는 항상 내가 바이올린 교습을 받을 수 있도록 돈을 마련해주셨다. 17세 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연주회가 있어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문학을 전공했다. 연주자로서 어떤 장점이 있나.
“문학과 음악은 여과지처럼 내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라 생각한다. 문학과 예술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문학은 종종 내 음악 프로그램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보다 엘리엇 카터, 존 아담스, 제니퍼 히그돈 등 현대 곡을 주로 연주하는 이유는.
“난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즐긴다. 19세기 이전의 소설을 읽거나 옛날 영화만 보는 것으로 내 자신을 제한하고 싶지 않으며, 음악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역사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주지만, 오늘날 창작된 미술과 음악은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올해 계획은.
“’무궁화’ 이후에 LA필하모닉과 디즈니홀에서 두번 더 콘서트가 잡혀있다. 하나는 디즈니홀 초연곡이며, 또 하나는 할리우드 보울에서 베토벤을 연주할 예정이다.”
◆마크 그레이와 무궁화
☞‘무궁화’는 한국전쟁 중 북한 감옥에서 탈출한 시인이자 엔지니어인 김남수(1927- )씨의 시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산 가족의 비애를 담고 있다.
남한으로 탈출한 김씨는 캐나다에 정착 후 1981년 아내와 북한을 방문해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과 상봉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생사를 모른 채 70년대 북한에서 사망한다. 토론토로 돌아온 김씨는 은밀하게 편지와 약을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지만, 전달여부는 불투명하다. 가족을 그리워하던 김씨도 몇 년 후 눈을 감는다.
마크 그레이는 2008년 김남수의 딸 미아를 아스펜뮤직페스티벌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가 남긴 시에서 영감을 받아 ‘무궁화’를 작곡했다. 이 곡은 바이올린, 더블코러스와 체임버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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