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 플레이스] '소피의 선택'과 기름값
박용필/논설고문
1982년에 개봉된 동명의 영화는 세계적인 화제작이 돼 주연을 맡은 메릴 스트립도 덩달아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는 이듬해 스트립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다. 이후 무려 16차례나 오스카 후보에 지명됐으나 소피의 연기에는 미치지 못했는지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스트립은 지난해 하버드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아 소피의 인기가 식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영화는 퓰리처 수상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했다. 20세기 100대 명작에 꼽히는 작품으로 폴란드계 여성 소피의 인생궤적을 다룬 소설이다.
히틀러의 광기가 유럽을 짓누르고 있을 무렵 소피의 아버지는 나치의 부역자가 돼 유대인 집단학살(홀로코스트)에 앞장선다. 그러나 아버지와 남편은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두 아이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소피. 수용소에서 독일군 장교는 소피에게 잔인한 선택을 강요한다. 두 아이 중 하나는 살려주고 다른 하나는 개스실로 보낼테니 결정을 내리라고 다그친다. 선택하지 않으면 두 아이를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나치 장교.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엄마 소피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자 소피는 딸을 내어준다. 끌려가는 어린 딸을 보며 통곡하는 소피. 그 후 유창한 독일어 실력을 인정받아 수용소장의 비서가 된 소피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의 잠자리 시중까지 든다.
마침내 수용소장으로부터 아들을 살려주겠다는 다짐을 받아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들의 생사도 확인 못한 상태에서 전쟁은 끝난다. 스웨덴의 난민 수용소에서 소피는 손목의 동맥을 끊어 자살을 기도한다.
딸이냐 아들이냐의 두 갈래 운명의 길에서 아들을 고른 소피. 그러나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두 아이를 모두 잃고 자신마저 파괴시킨다. '소피의 선택'이란 말이 왜 회자됐는지 가늠할만 하겠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의 아픈 상처를 안고 미국으로 건너온 소피는 작가 지망생인 스팅고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스팅고는 소피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스팅고의 청혼을 받자 소피는 그때서야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선택의 순간을 들려준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참혹한 기억들. 그 때 슈만의 피아노곡 '어린이의 정경'이 흘러나온다. 선율은 잔인하게 아름답고 소피가 살아가는 세상은 무섭게 끔찍하다. 결국 소피는 음독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소피의 선택'이 요즘 또 다시 화제어로 떠올랐다. '피가 강물로 흐를 것'이라며 국민들에 총부리를 겨눈 독재자 카다피가 비극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리비아 뿐만이 아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산유국에 불어닥친 민주화시위로 오일값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해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던 세계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개솔린값이 갤런당 4달러를 훌쩍 넘어 주유소 가기도 겁이 난다.
어쩌면 미국도 '소피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가와 글로벌 경제 안정을 위해 독재자들을 지원해야 할지 아니면 민주화를 이끌어내야 할지…. 잘못 선택하면 미국은 두 가지 옵션을 모두 잃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결정하지 못하면 결정당하는 위기의 순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소피의 선택'을 하게될까 걱정이 된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