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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 '깽깽이' 이야기

박봉구/VP Stage NY 대표 국악인

'거지 깽깽이'라는 소리가 있는걸 보면 정말 걸인들이 ‘깽깽이’를 사용하긴 했던 모양이다. 그 성음이 깽깽거리는 듯 해 그리 불렸을까, 아니면 그 익살스러운 소리 때문일까. 다름 아닌 전통 악기인 해금을 일컫는 말인 게다. 문헌에 따르면 깽깽이 이외에 깡깡이, 앵금, 행금으로도 불렸었다.

해금은 두 개의 명주실을 꼬아 내려 아래 부분의 자그마한 공명통에 연결 시킨 뒤 말총 활을 켜서 소리 내는 찰현악기이다. 송혜진 교수가 지은 '한국악기'에 따르면 해금은 6세기경 중국 해(奚) 부족에서 유래해 고려시대 우리 나라에 정착 했다고 한다.

해금에 얽힌 재미난 일화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1748∼1807)의 '유우춘전'을 통해 전해 내려 온다. 얘기인즉 유득공이 유우춘이라는 당대 명인을 찾아 한 수 배움을 청하기 전 어디서 해금을 켜다 망신을 당했었나 보다. 다름 아니라 해금으로 새소리, 벌레소리들을 흉내 내려다 ‘거렁뱅이 깽깽이’라며 면박을 당했던 게다.

그래서 그 놈의 거렁뱅이 깽깽이를 면하고자 명인을 찾아 배움을 청했던 게다. 그런데 유우춘 명인 왈. “제가 타는 해금이나 거지가 타는 해금 연주가 무엇이 그리 다르겠습니까. 제가 이 해금을 공부한 것은 노모가 계시기 때문이지요. 신통치 못하다면 어찌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저의 해금 솜씨는 거렁뱅이의 소리보다 격이 높은 듯 하지만 어찌보면 그만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해금 연주를 앞세워 구걸을 하는 거리의 악사들은 해금으로 기묘한 소리들을 흉내 내기만 해도 듣는 사람이 겹겹이 둘러서게 되고, 켜기를 마치고 돌아가면 따라붙는 사람들만 해도 수십 명이라 하루의 수입이 이만 저만이 아니랍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올시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지요.”(한국악기 p117)

‘거지 깽깽이’에 관한 유래를 볼 수도 있지만 행간으로 미루어 봐, 유우춘 명인은 이미 접신의 경지에 들어선 듯 하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관통하는 철학을 지녔고, 좋다 나쁘다와 옳다 그르다의 경계를 허물고 거기에 겸손의 미덕까지 갖춘 예인의 풍모를 지녔음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해금이 유랑예인들의 걸식 행위에만 쓰였던 건 아니다. 오히려 궁중음악, 민속악, 무속음악, 그리고 근래의 국악관현악단의 창작음악까지 그 쓰임이 다양하다. 특히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 OST에 해금 선율을 이용한 곡들이 주목을 끌며 해금 연주자들이 클래식음악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스타 대접을 받기도 한다.

봉 선생 주절주절 해금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은 지난주 뉴욕에서 활동 하는 해금연주자 한희정씨가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초대를 받아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한씨는 조선조 귀족 사회에서 전승되던 풍류 음악으로부터 ‘지영희류 해금 산조’ 그리고 역시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양승환씨, 베이시스트 이준삼씨와 함께 전통민요 ‘옹해야’를 보사노바 풍으로 편곡한 크로스 오버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대를 만들었다.

한씨의 현을 쥐락펴락 하는 손놀림에서 새근새근 호흡하는 갓난 아이의 숨결이 나오고, 활달한 활 질에선 씩씩한 말 탄 장수의 위엄을 불러낸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활을 잘도 뽑아 낸다. 한국에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오랜 연주 활동을 한 전문가임에도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 하며 겸손함도 잃지 않는다.

어찌 보면 두 줄 사이를 오가며 활을 움직여 소리 내는 해금이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해금 소리 속처럼 누구는 사대부 양반의 권세를 누릴 것이고 또 다른 누구는 걸인처럼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극과 극의 세상을 아우르는 소리를 만들어야 되는 연주자는 애가 끓을 법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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