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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소설은 나부랭이가 아니다

권소희/소설가

어느 수필가가 쓴 '소설 나부랭이'란 칼럼을 읽게 되었다. 그 글을 읽으며 소설 나부랭이나 쓰고 있는 나는 씁쓸했다. '하필이면 소설 나부랭이가 뭐꼬. 수필 나부랭이도 있고 시 나부랭이도 있는데….'

그 칼럼은 여러 문학작품의 예를 들며 소설 나부랭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게 요지다. 소설의 가치를 높여주려는 필자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 변명 때문에 소설이 진짜 나부랭이고 전락되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소설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 소설 나부랭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가라는 우울한 작업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작가로선 치명적일수도 있고 행복한 비명일 수도 있다. 비평가는 분석을 가미함으로써 좀 더 편안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예술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은 비평가의 해석에 의해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면 문학상을 탔거나 평론가의 시선을 받는 작품 만이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실제로는 평가를 받지 못한 작품이 더 허다하기에 그 부분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섣불리 소설의 생명력을 문학적 가치로 확대하거나 소설 나부랭이라고 축소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특이한 경험을 얻는 것 말고는 없다. 즉 예술 자체가 인생의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은 그 자체로 무엇이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한 부분에 불과하다. 소설가가 세간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소설이 읽는 독자가 한낱 나부랭이로 여겼다면 그 또한 완벽한 표현이다. 예술은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기에.

빗나간 얘기가 되겠지만 작가 중에는 작가로서의 자질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런 부류에게는 좀 더 전문화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설익은 작품들이 양산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화가들이 캔버스와 물감 붓만으로는 충족할 수가 없어 주변의 재료들을 화폭에 끌어들이듯이 이제는 이분법적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고급과 저급 그리고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이 의미가 옅어져 가고 있다. 그만큼 예술 활동의 저변이 넓어져서 전문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나도 작가다'하는 열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이지만 소설을 쓰겠다는 소설가 지망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도 재미없는 소설이 판을 치니까 직접 나서고 싶은 것인가.

문학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쾌감을 안겨준다. 도덕적 쾌감이라는 건 어떤 행위에 있어 선과 악으로 나누는 옮고 그름의 경계가 아니라 지적인 희열을 뜻한다. 때문에 소설 나부랭이가 되는 것에 발끈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민사회라는 전통적 가치를 새롭게 표현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치열함이야말로 소설이 나부랭이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나도 작가다'할 수는 있다손 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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