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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밥으로 하여 아름다워라

이영주/수필가

오랜만에 딸들과 맨해튼 거리를 걷는데 푸드트럭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앞을 지나게 되었다. 무심코 쳐다보니 푸드트럭에 ‘Bob & Jo(밥줘)'라는 이름이 써있다.

LA와 뉴욕에서 한국음식 푸드트럭이 히트상품이 되었단 얘기는 들었으나 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메뉴가 김치타코며 불고기 덮밥, 비빔밥까지 다양했다. 아기들이 ‘엄마’ 다음에 제일 먼저 배우는 ‘밥줘!’라는 말에 새삼 가슴이 따뜻하게 뛰었다.

혼합하는 재료나 계절, 짓는 방법에 따라 수 십 가지나 되는 밥은 먹거리 중의 먹거리다. 우리처럼 밥이 주식인 일본의 경우엔 쌀의 품종만 570여 종이며 ‘밥 소믈리에’까지 있다고 한다. 밥의 맛과 향과 질은 물론 생산지까지 분별하는 밥소믈리에 이야긴 흥미로우면서도 아직 조금은 생소하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주식은 5000년 전부터 조, 피, 보리, 수수 등의 곡물이었다. 그러다가 BC 200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벼농사를 하면서부터 쌀이 주식에 편입되었다.

5∼6세기경까지만 해도 벼 생산이 충분하지 않아 쌀밥은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하신 몸이었으나 벼농사가 활발해진 조선시대부터 보편화되었다. 벼 재배의 기원은 놀랍게도 BC 7000~5000년대에 이미 벼농사를 지었던 인도가 제일 먼저고, 다음이 중국으로 BC 5000년경부터였다.

시대가 바뀌니 밥 문화도 진화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쌀밥이 아니라 현미밥, 그것도 잡곡이 두루 섞인 현미오곡밥이 웰빙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해물이나 밤, 대추, 은행, 인삼 등을 넣은 영양 돌솥밥은 이미 클래식이고, 곤드레밥이니 취나물밥이니 하는 특수밥집들이 한국에선 특수를 누린지 제법 되었다.

나도 얼마 전부터 나물의 독특한 풍미로 맛과 멋이 나는 나물밥을 짓기 시작했다. 현미잡곡밥에다 하루에 다섯 가지 다른 색깔의 야채를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이 나이에 매일 구색 맞춰 다섯 가지 야채를 요리하는 일은 힘들다. 무엇보다 일이 귀찮은 나이여서 간소화하다 보니 세 가지 정도의 나물을 함께 넣은 나물밥 짓기로 발전된 것이다.

현미와 현미찹쌀을 반반씩 섞은 후 거기에 찰수수, 율무, 차조, 팥, 야생쌀, 검정쌀, 검정콩, 밤콩 등 갖가지 콩을 넣은 현미오곡밥에 고사리며 도라지, 취나물, 얼레지, 시래기, 곤드레, 우엉, 부지깽이, 연근, 다시마 등등 그때그때 있는 나물을 넣고 밥을 지어서 양념간장에 비벼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그렇게 하면 다섯 가지 야채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도 해방될 뿐만 아니라 생선 한 토막이나 스테이크 한 점만 곁들이면 김치와 더불어 꽉 찬 식단이 완성되니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학자들도 현미오곡밥은 반찬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영양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밥은 삶의 원천이다. 밥은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은 물론 시대 상황과 사회, 경제, 정치까지도 다 포함된 문화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밥상에서 모성애의 절정을 만끽하며 공동체 의식이나 생명의 존엄성을 몸으로 배운다.

나물밥을 먹으면 각각의 나물의 다른 맛을 느끼는데, 그 다른 맛들이 나름대로 맛이 있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그 때 생각난 것이 사람의 맛이었다.

그렇다. 밥은 또한 인간이다. 밥알처럼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니, 다른 나물들을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으면 익숙한 밥 맛 속에 이제까지 몰랐던 색다른 맛이 엔돌핀으로 생성되듯 만사가 평화를 찾게 되었다.

나물밥을 먹다 보니 비록 나와 다를 지라도 그 다름을 귀하게 여기라는 메시지가 저절로 내 안에서 들리기 시작했다고 할까. 예전 같으면 서로 달라 불편했던 사람도 어느 순간부터 이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그 존재를 감사하게 된 것이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서로의 밥이 되어주라’고 말씀하셨다. 게으른 밥짓기의 지극히 사소한 일상에서 보석 같은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됨이 새롭다. 우연히 ‘밥줘’를 만나 밥으로 하여 아름다운 또 하나의 보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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