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은 여행전문 통신원과 떠나는 유럽]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과 국립미술관…거리 예술가의 도시
자전거 타는 여인들로 거리 '물결'
중요 관광지 대부분 구시가에 몰려
국립미술관 렘브란트 살아있는 듯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녁에는 늦게 문을 닫는데, 꽃가격이 무척 좋다. 튤립 구근 55개 들이 한 팩이 6유로(8달러). 두 팩(110 구근)을 사면 2유로의 할인 혜택이 있다. 봉우리가 피기 전 싱싱한 50 송이 튤립의 가격은 6유로 ~ 8유로(8달러 ~ 10 달러).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골목이라 아내와 나는 아침 저녁으로 꽃시장을 찾았다.
암스테르담의 중요한 관광지는 거의 모두 구시가에 몰려 있다. 구시가는 부채를 꺼꾸로 펼쳐 놓은 것 같은 모양. 시의 구심점인 중앙역은 부채끝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큰 길을 따라 1마일 정도 올라 가면 담광장(de Dam)이 나온다. 왕궁과 신교회, 마담 투소 밀랍인형관 그리고 전몰자 유령탑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담광장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과 자전거들로 넘쳐난다. 유령탑 앞은 실력있는 거리예술가도 있지만 이상한 여자(남자?)들도 가끔 보인다.
네델란드는 '낮은땅'이라는 뜻. 땅이 물러 돌보다는 나무로 지은 집들이 많은 곳이다. 지붕은 거의 뽀족하고 성냥갑같은 집들은 무척 귀여워 보인다. 운하로 이루어진 도로의 난간에는 그냥 걸쳐 있는 자전거로 넘쳐나고, 긴머리 날리며 페달을 밟는 여인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싱그럽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천국 도시. 담광장 옆으로 올라 가니 홍등가(Red-light district)가 나왔다. 매춘부들은 진열장 커텐 뒤로 요염한 자태를 취하고 섹스숍은 옆에 있다. 이곳에서 여행객들에게 '하시시 하시시' 하며 다가 오는 자들은 모두 뚜쟁이. 위로 10블럭, 옆으로 3블럭 전체가 홍등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기는, 암스테르담의 매춘역사는 800년을 자랑한다고 한다.
‘I amsterdam’ 광고문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뒤로 보이는 건축물이 바로 국립미술관(Rijksmuseum)이다. 국립미술관의 규모는 여유를 갖고 작품을 감상하기에 매우 좋은 박물관이다. 나는 명화들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새기며 한 작품씩 감상하기 시작했다.(사진촬영 금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작품은, 골목길(The Little Street), 편지를 읽는 푸른옷의 여인(Woman in Blue Reading a Letter). 우유따르는 여인(The Milkmaid). 연애편지(The Love Letter). 프란스 할스(Frans Hals)의 작품은, 기분 좋은 술꾼(The Jolly Drinker)과 The Company of Reynier Real(1637). 렘브란트(Rembrandt)의 작품은,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아(Jeremiah Lament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수도자 티투스(Titus as a Monk),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자화상(Self-portrait as the Apostle Paul), 유대인 신부(The Jewish Bride), 암스테르담 직물조합의 감독위원들(Syndics of the Drapers' Guild),
마지막 방(Zaal Room 12)에 들어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렘브란트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야경은 뒷배경이 어둡다 하여 영국의 초상화가 죠슈아 레이놀즈경이 붙인 이름이다. The Night Watch (1,642) 363 X 437cm. 그러나,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이 이끄는 민방위대'다.
The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 and Lieutenant Willem van Ruytenhurch 돈많은 귀족이었던 코크 대장은 민방위대 본부 중앙홀에 장식할 그림을 렘브란트에게 의뢰, 렘브란트가 1642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작품 중간에 검은 옷을 입고 빨간색 어깨띠를 두른 사람이 바로 코크 대장이다. 하지만, 코크 대장, 루이텐부르크 중위(노란색 복장)를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야경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모습이 옆모습만 보이거나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야경과 함께 바로 앞에 전시돼 있는 프란스 할스의 작품을 보면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할스는 당시의 유행대로 출연자 전부를 차별하지 않고 모두 잘 그려주었다.
작품의 마지막 마무리는 피터 코더(Pieter Codde)에 의해 1637년, 완성됐다. 렘브란트와 할스 작품 외에도 '전시방 12' 에는 또 다른 한 작품이 걸려 있었다. Gerrit Lundens: Kopie van de Nachtwacht(1650) 66,5 x 85,5 cm. 렘브란트의 야경을 1/6 정도로 축소시킨 모조품이다. 이것은 코크 대장이 집안 벽을 장식하려고 게리트 룬덴스(Gerrit Lundens)에게 의뢰한 작품. 야경에 비하면 빛의 균형이 맞지 않고 표현력도 많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야경은 현재, 네델란드에서는 제1급 국보로 인정받는 최고의 작품이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 앞에 서니 심장이 떨려온다. 대작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위대한 작품인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황홀한 마음으로 작품 끝에서 끝까지 살펴 보고 있는데, 기수(Ensign Bearer: Jan Visscher Cornelissen)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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