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김춘추가 당나라에 간 까닭은
노재원/편집국장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신라는 당시 백제와 고구려의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렸다. 서기 642년 백제군에 의해 대야성이 함락될 때 성주인 사위와 딸을 잃은 김춘추는 당나라로 건너가 백제를 치기 위한 군사 지원을 요청, 당 태종으로부터 이를 약속 받았다.
신라는 백제의 계속된 공격이 두려웠고 당나라는 수나라 멸망의 원인이 된 북쪽 강국 고구려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신라와 당나라는 이후 연합군을 구성해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각각 멸망시켰다.
신라와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 후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가 갖기로 했으나 당나라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는 등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 야욕을 드러냈다. 결국 신라는 7년 간에 걸친 힘겨운 싸움 끝에 당을 몰아내고 676년 삼국 통일을 마무리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만주벌판까지 지배했던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대부분 잃어버리고 평양 이남으로 우리 영토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또 외세를 끌어들인 것도 시비의 대상이다.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고구려 유민들이 지배층을 형성했던 발해(698~926년)와 통일 신라가 공존했던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 신라의 통일은 이후 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민족 단일국가의 시원이 됐다.
21세기 한반도는 신라-발해 이후 1천 여년 만에 다시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다.
해방 직후 외세와 이념•사상의 차이에 의해 분단된 남과 북은 1948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후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의 우열은 이미 명백하게 가려졌다. 한국은 세계 속의 작지만 강한 나라로 우뚝 선 반면 북한은 지구촌 유일의 세습 왕조라는 전근대성과 폐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주민들의 궁핍한 삶도 아랑곳 않는 빗나간 군사력 강화와 인권 유린은 지탄의 대상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 26일 국무회의서 비공개 안건으로 상정된 한일 군사정보협정(GSOMIA)을 전격 통과시켰다.
핵과 미사일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증가하면서 북한 정보를 공유할 필요성에 따라 추진했다는 것이다. 대북 억지력을 위한 일본의 정보력과 유사시 주한미군, 주일미군이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류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한일 두 나라는 앞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물론 사회 동향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이 같이 중요한 결정을 여론 수렴 절차도 없이 비밀리에 통과시킨 것은 신라가 당나라에 군사 요청을 한 것보다 더 못 한 일이다. 위안부, 독도 문제 등 일본과의 갈등이 여전한 상태에서 국민 정서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결정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렵다.
그 옛날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은 것은 어쩌면 통일보다는 생존이 더 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백제와 고구려의 틈바구니서 존립이 위태로웠던 신라로서는 늑대가 아니라 호랑이라고 해도 당나라의 힘을 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이 북한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재래식 군사력은 몰라도 경제력이나 인구, 외교력 어느 하나도 밀리지 않는 한국이 달갑지 않은 외세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한 처지인가. 대통령의 외국 순방 중 한일군사정보협정을 통과시킨 것은 불가피성이나 타당성보다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행위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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