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신의 행복 칼럼] 삐진 마음 빨리 풀기.
내 아내의 특징이 하나 있다. 삐져도 금방 마음을 푼다. 진짜로 ‘삐져 봤자’다. 분명 틀어진 것 같은데 불과 2~3분도 안 걸려 풀어버리고 정상적인 말투로 돌아온다. 도깨비처럼 자기 감정을 이리 뚝딱 저리 뚝딱 자유자재로 바꾸는 아내가 처음에는 정신이 이상한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리 순식간에 틀어진 기분을 풀어 버린단 말인가.삐진 사람의 얼굴 표정과 대화 방식이 금방 달라지는 것은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다. 말이 아예 없어지던지 ‘알아서 해’ ‘마음대로 해’ 아니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들을 반복하며 무뚝뚝해 진다. 또 삐져 있는 사람에게 ‘삐졌어?’하고 물으면 화를 사게 된다. ‘응, 나 삐졌어. 미안. 그만 삐질께!’ 하며 자신의 기분을 쉽게 푸는 사람은 없다.
나도 삐지면 한 2-3일 간다. 그리고 아내가 내 비유를 잘 맞추어 주기를 바라는데 결혼 초기에는 잘 해 주던 아내가 이제는 삐질대로 삐져라 하며 마냥 내버려 둔다.
‘옌씨 필립’이라는 저자의 책에는 삐진 남편이 화를 못 참고 집을 아예 사슬톱(chainsaw)으로 반 조각을 내 버린 이야기가 있다. 반쪽의 집을 땅 모퉁이로 옮겨 놓은 다음 대강 수리를 하고 아내와 떨어져서 40년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책은 그 가정에서 직접 자란 아이가 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써졌다. 당시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날 아침 부인이 너무 비싼 우유를 사온 것이 못마땅하여 화를 냈다고 한다. 나는 집은 반쪽을 못내도 화가 나면 아내와 같이 자는 침대 가운데 줄을 그어 놓고 넘어 오지 말라고 투정부린다.
알고 보니 ‘삐지다’라는 말이 틀린 것 같다. 맞는 말은 ‘삐친다’인데 ‘토라진다’라는 표준어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편집장이나 언어에 박식하신 어르신들이 나한테 안 삐치셨으면 좋겠다. ‘토라지다’라는 말의 뜻은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뒤틀리어서 싹 돌아선다’라고 사전이 말 해준다.
그런데 왜 토라지면 며칠씩, 길게는 몇주일씩 가야 풀리는가. 삐친 사람의 마음은 당연히 불편하겠지만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괴로울까? 그리고 그 토라진 마음이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 오게 되는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내 경험에 의하면 싹 돌아서게 된 이유를 기억도 못할 뿐더러 당시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서 마음이 풀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삐치면 2~3일 정도 간다고 했는데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삐쳐 있는 상황에서 부부관계가 이루어지는 전례가 없는데 이것이 나한테는 너무 괴롭다. 그렇다고 삐져 있는 나를 아내가 알아서 챙겨 주는 것도 아니다. 하는 수 없이 다급한 내가 스스로 기분을 좀 풀어야 되고 아내를 꼬셔 봐야 무언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부부관계를 화끈하게 끝내고 나면 내 마음이 싹 풀리는 것을 매번 알게 된다. 언제 삐쳤었냐는 듯이 말문이 터지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 처럼 아내와 히히덕 거리며 주책을 떤다.
토라지는 마음은 모든 감정과 같이 피지컬(physical, 육체의 현상)이라는 것이 현대 과학이 말한다. 언짢은 말이나 불쾌한 상황에 흐트러진 기분은 자율 신경계와 호르몬 축(Hypothalamus-Pituitary-Adrenal Axis)을 자극 시켜 몸을 경직하게 만든다. 이렇게 변한 몸은 마음을 쉽게 풀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가지게 하는데 이 것이 다시 호르몬 축을 되먹이면서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생각을 과감하게 바꿀 수 있는 유연한 두뇌나 경직된 몸을 풀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토라진 기분이 지속된다.
삐쳤을 때 상대방의 탓이라고 사과를 기다리거나 내 기분이 풀어질 때까지 묵묵히 버티는 행동은 어리석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삐쳐도 2-3분안에 정상적인 기분을 찾을 수 있는 아내가 고맙다. 나도 삐칠 때는 삐치더라도 빨리 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삐치는 것이 육체적인 스트레스 반응인 이상 상대방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내 자신부터 잘 살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현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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