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에세이] 은둔 시인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은 월트 휘트먼과 함께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녀는 일생 미혼으로 지내면서 자신이 태어난 매사추세츠주의 앰허스트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사회 접촉을 피했기 때문에 “앰허스트의 수녀”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녀는 일생 1천 8백 편 이상의 시를 쓰고 가다듬었지만 생전에는 외부에 시인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숨어서 진행한 자신의 창작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내 마음속에 갈라진 심연을 느낀다/ 마치 내 두뇌가 두 쪽인 것처럼/ 나는 그것을 붙여보려고 노력한다. 이음새에 맞춰서/ 그러나 그들을 꼭 맞게 할 수 없다.
뒤에 떠오른 생각을 앞에 나타났던 생각과 연결시켜 본다./ 그러나 글의 연결은 음률에 의해 흐트러진다./ 마치 마루바닥에 널려진 공들처럼”
(내 마음 속에 갈라진 심연을 느낀다. 전문)
그녀가 죽은 후인 1890년이 되어서야 시가 발견되어 그녀의 명성은 점차 퍼져나갔다. 그녀의 시는 제목보다도 숫자로 표현된 것이 많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앰허스트 지역의 명사로 변호사였으며 지금도 사립대학으로 유명한 앰허스트 대학을 세웠다. 아버지 역시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 대학의 재정을 담당했다. 그는 정치에도 깊이 관여하여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적도 있다. 그런 연고로 해서 디킨슨 집안은 대대로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으로 꼽혔다.
어머니는 부드럽고 수동적이었으며 신앙심도 깊었으나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인해 자녀들에게조차 따듯한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 사이에서도 서로 애정을 나타내는 법이 없었다. 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는 늘 어머니 없는 아이같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9살에 앰허스트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전반적으로는 행복한 시절이었으나 사춘기 때 한 친구가 사망하자 그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일 년간 학교를 쉬었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벌판을 헤매고 다녔다”고 했다. (13)
“나는 황야를 본 적이 없어요./나는 바다도 본 적이 없고요./ 그러나 나는 알지요. 히스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파도가 어떤 것인지도.
나는 하나님과 대화한 적이 없어요./ 천당을 가 본적도 없고요/ 그러나 분명 나는 그 곳을 알고 있지요./ 마치 그 지도를 받은 것처럼.
(나는 황야를 본 적이 없어요. 전문)
그녀의 침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공동묘지가 있어서 늘 눈에 띄었다. 그녀는 죽음, 묘지, 신의 존재 같은 주제를 시에서 자주 다루었다.
“결국-기도하고-남겨지고-남겨지고/ 오 예수-하늘에 계신/ 나는 어떤 것이 당신의 방인지 모릅니다./ 나는 아무 방이나 두드리지요-” (502)
이런 시도 있다. “저들-죽어가면서/ 어디로 갈지 알고 있다./ 그들은 신의 오른 손으로 갔다./그 손은 이미 절단되어 있다./ 신은 찾을 수 없다.” (1551)
“내가 죽었을 때 파리가 나는 소리를 들었다./ 조용함이 내 형태를 덮었다./마치 폭풍의 융기 속에서/ 하늘에 잠시 나타나는 정적처럼. (죽음, 일부)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