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맛과 멋]낫으로 두릅을 따는 사람
청와대 대변인이 방미 중에 인턴을 성희롱 해서 낙마했다는 얘기가 아침 신문 1면을 장식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다른 한 국가를 방문해서 국가간의 우의를 다지는 중차대한 목적이 있는 공무 수행길에 이런 불상사가 빚어졌다.도대체 공직자의 자질이 어떻게 이 정도일까, 국가의 수치심보다도 더 깊은 모멸감에 말을 잃었다. 원인을 짚어보았다. 아마도 인성 교육 부재에서 오는 남녀노소, 상하를 불문한 총체적 도덕감 부재가 문제인 것 같다.
연예인을 시켜준다며 십대 소녀들을 유린한 연예인도 자주 등장하고, 뺑소니 운전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언젠가는 국회의원이 신문기자를 성희롱 했다가 혼쭐난 일도 있었다. 한 공기업 고위층 인사가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난동을 부려 한국으로 쫓겨 간 일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 아닌가.
지난 주 동문들과 산에 갔을 때도 기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나이도 꽤 지긋한 두 부부였다. 그들의 부인인 두 여인은 길 위에 서 있었고, 그녀들의 남편 두 사람은 두릅나무가 있는 조금 비탈진 아래 쪽에 있었다.
두 남자는 낫을 치켜들고 두릅나무를 끌어내려 두릅을 따는 중이었다. 낫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도시에서 자란 나는 낫으로 사람이 무엇인가를 자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그 광경이 그렇게 살벌할 수가 없었다. 산에서 두릅을 더러 따먹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낫을 들고 본격적으로 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어떤 이는 이민 가방을 가지고 히스패닉 일꾼 한 사람까지 데리고 가서 두릅을 따다가 걸려서 1500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하고, 조금 더 오래 전엔 뉴저지에서 쓰레기 주머니 15개에 두릅을 따서 음식점에 팔다가 걸려서 5000달러의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까지 비슷한 사례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후배가 "산에서 그렇게 하시면 보기에 안 좋습니다. 한국인이 부끄러워집니다"며 점잖게 한 마디 했는데도 그들은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산에서 나는 나물이며 열매를 보면 그저 맛이나 볼 정도로 따면 되지, 나무를 꺾어가며 탐욕스레 수집해가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산에 다니다 보면 더한 경우도 만난다.
점심 먹으며 한 잔해서 거나해진 등산객들이 남녀가 박장대소하며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일이다.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방에 가서 할 일이지 왜 산에서까지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산에 왔던 미국인들이 그런 한국인들을 낯설게 쳐다보며 지나갈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자연에 대한 외경과 함께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의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신비를 음미하며 절대자의 숨길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발 밑에 깔린 풀 한 포기마저도 소중하게 지켜줘야 하는 신성한 학습장이다.
기실 공무 수행 중에 인턴을 성추행 한 사람이나 낫으로 두릅 따는 사람이나 무엇이 다른가. 지난 주 산에서 만난 '어글리 코리언' 때문에 산 얘기가 길어졌지만, 정부를 대표해서 온 공인도, 팬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도, 아니 우리 자신도 나의 도덕지수는 어디쯤인지 한 번쯤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 잣대가 유독 연예인이나 공직자에겐 더 엄격하지만, 기본적으로 도덕성에 문제가 없어야 언제 어느 자리에 자신이 속해 있든, 규범을 지키고,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반듯한 사람이 될 것이다.
사실 애국이란 게 별거 아니다. 각자가 자기의 본분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애국이다. 이미 옛날에 공자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씀을 하셨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미국법을 준수하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며 사는 게 최고의 애국이다.
이 영 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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