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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톰 클랜시와 해군 기념관 - 영 그레이

앨라배마 거주 수필가

10월 첫날, 젊은 시절 나의 의식을 뜨겁게 달구었던 작가 톰 클랜시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의 나이가 66세여서 더욱 안타까웠다. 1980년대 중반, 베스트셀러였던 그의 첫 소설 ‘붉은 10월호를 추적하라’(The Hunt for Red October)는 나의 고루한 생활에 스릴러의 매력을 맛보여 주었고 독서의 취향을 바꾸도록한 책이었다. 특히 군복을 입고 복무하던 중이어서 군과 관련된 긴장과 박진감이 넘치던 숨막힌 사건의 전개에 쉽게 끌려들었다.

첩보의 기술과 최첨단 군사 무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의 스토리는 치밀한 구성과 사실성 강한 전략으로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두꺼운 부피의 그의 소설은 많은 날 어린 딸들의 밥을 챙겨주는것을 잊게했고, 밤을 새우며 그의 책을 읽은 후 충혈된 눈으로 비틀거리며 출근하게도 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때까지 나의 일상은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연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 그당시 나의 영웅은 대통령이 아니라 인간미가 넘치고 정의를 구현하던 ‘잭 라이언’ 이었다.

톰 클랜시는 미국 정보계와 군의 비밀스런 중추부 요원들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태에 뛰어난 전술로 대응하는 줄거리로 독자를 사로잡은, 현 시대에 드문 군 액션 스릴러의 거장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합작으로 쓴 스토리에서 조금씩 흥미를 잃어갔다. 스토리의 다이내믹이 변했고 조사원들이 찾아준 다양한 자료를 짜깁기해서 사건을 연결하는 감이 강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창의력에 욕심을 부렸던 나의 착오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잠수함이나 해군함정을 보면 강력한 인상을 주었던 그의 첫 소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의 죽음으로 조금 우울한 채로 워싱턴 DC로 여행갔다.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는 바람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큰딸과 함께 매일 신나게 어울려 다녔다.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이 모두 문을 닫아도 볼것은 많았다. 딸에게 톰 클랜시의 작품에서 받은 영향을 이야기하니 딸이 펜실베니아 에브뉴에 있는 해군 기념 프라자로 나를 안내했다. 바닥에 대리석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새겨넣은 프라자에 멈추어 선 한 외로운 해군의 동상곁에서 머뭇거리다 ‘2013년은 여군의 해’라는 광고를 내세운 해군 기념관에 들어섰다. 산뜻한 디자인의 작은 리셉션 공간은 친밀감을 주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지하의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비영리단체로 운영하는 해군 기념관은 전시장과 극장시설을 갖추고 해군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홍보하고 있었다. 특히 ‘여군의 해’에 맞추어서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국방에 흔적을 남긴 여성들의 발자취가 전시되어 있었다. 여군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1776년부터였다. 남장하고 활약한 여성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어떤 전쟁에도 여성들이 국방에 큰 기여를 했다. 현 국방부 병력에 육군의 13.5%가 여군이고, 해군은 17%, 해병대는 7%, 해안 경비대는 16%, 그리고 공군은 20 %가 여군으로 엄청난 숫자의 여성들이 군복을 입고 전 병과에 복무하고 있다.

전시관 한쪽에 터치 스크린으로 마련된 The Navy Log에서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곳에는 군함과 잠수함들의 정보가 아니라 사람들의 스토리가 있었다. 현재 61만 5천이 넘는 현역과 퇴역 해군들이 등록했고 이름이나 근무지로 옛동료들도 찾을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1775년에 설립된 막강한 미국 해군의 역사는 또한 미국의 역사이고 미국인들의 역사였다.

천천히 전시장을 돌며 숙연하다가 소란스레 들어온 한 그룹의 노인들을 보았다. 80대쯤의 노병들과 그의 아내들이었다. 노병들이 쓴 모자에는 ‘USS Yancey, AKA-93’가 새겨져 있었다. 과거 전투 화물선이었던 얀시함에 근무했던 해군장병들이 일년에 한번 재회해서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배와 동료들을 회상하고 서로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얀시함은 1944년에 건조되어 세계 2차 대전시 일본과 격전을 벌렸던 이오지마(Iwo Jima) 상륙전에 참여했고, 일본이 항복문서에 사인하는 것도 목격했다. 한국전과 쿠바 미사일 위기에도 활약했던 얀시함은 지금은 노스 캐롤라이나의 해안 가까이 바다밑에서 영원히 쉬고있다.

배도 사람도, 세월따라 사라지고 있다. 얀시함에 얽힌 사연을 듣는 내내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톰 클랜시가 마음속에 머물어서 가만히 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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