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문학] 자전거 - 이향숙
내게 ‘자전거’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약간의 ‘멜랑콜리’다. 마치 악기 중에 하모니카나 아코디언이 주는 느낌처럼, 먼 추억, 혹은 잊고있던 상처의 흔적들이 음악을 타고 떠오르며 나를 감싼다. 그래서 메마르게 지내는 어느날, 그런 음악들 덕분에 다시 촉촉한 노스텔지아에 젖어 추억여행을 하게된다. 내게 그런 느낌들은 매사가 시들해져 삶의 의욕이 없을 때 기분전환이 되기도 하고, 아직 감성이 살아있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그런데 두바퀴로 구르며 주위의 풍경들을 뒤로 보내는 자전거는, 멜로디가 없지만 그런 악기들과 비슷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은, 인상깊은 몇편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자전거의 역할 때문이다. 2차대전 후 로마가 배경인 1948년 영화 ‘자전거 도둑’은, 생업이 달린 자전거를 도둑맞고 찾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자전거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끝모를 슬픔을 자아내게 해서, 영화마니아들이 찾아보는 영화목록에 들기도 한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는 암울한 나치 독일시대를 배경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얘기를 전해주는데, 여자주인공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자전거로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The kid with a bike’란 영화는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한 아이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외로운 그 아이에게 자전거는 늘 함께 있는 가족같은 존재다.
그리고 짧은 단편 에니메이션 중에 ‘아버지와 딸’이라는 명작이 있다.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만화로 된 영상과 음악으로 모든 스토리가 전달하는 감동적인 영화인데, 아버지와 어린 딸이 함께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행복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딸이 어느정도 자랐을때 아버지는 자전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며 나이들어버린 딸은 그 자전거를 남기고 아버지처럼 이 생을 떠나 강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으로 끝난다.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이별과 시간의 흐름이란 주제를 다룬, 긴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모든 영화에서 자전거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배경을 설명하는데큰 비중을 차지했고, 영화의 긴 여운은 멜랑콜리한 감정을 담고 있다.
이렇게 내 생애 멜랑콜리한 감정 속에는 ‘자전거’가 놓여있다. 내가 20대초 자전거 타기를 배우다가 무릎에 상처만 남긴 후, 다시 용감하게 자전거에 도전한 건 30년이 지나서다. 몇번을 넘어지며 기어이 자전거를 탄 것은 나이들면서 몸을 덜 사리기도 하고 용감해지기도 한 탓이다. 그래서 먼길이 아닌 동네 극장이나 공원을 자전거로 어술렁거리곤 했다. 그리고 서울의 한강을 따라 만들어진 고수부지에는 아주 길게 이어진 자전거도로가 있어, 그 길을 따라 달리며 혼자만의 사색에 빠지기도 했다.
이곳 애틀란타로 온 후, 한동안 잊고 살다가 요즘 다시 전거 타기를 다시 시작했다. 균형을 잡는데 서툰 나는 중,고 시절 버스로 통학할때 버스가 많이 출렁대면 영락없이 미끄러지곤 했고, 그래서 두바퀴로 균형을 잡으며 움직여야하는 자전거 타기는 내게 어려운 숙제였다. 지금도 아주 내몸의 일부처럼 편안한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자 하는 건 나의 ‘버킷리스트’에 자전거여행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지금 자전거란 존재는 오히려 내가 가진 멜랑콜리를 함께 나눠가져주는 듯 하다.
가끔 일가족이 자동차에 몇대의 자전거를 매달고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 보는 내가 더 즐겁다. 특히 호수나 강, 바다를 배경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물살과, 물가를 따라 저어가는 두바퀴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안전을 위해 꼭 헬멧을 써야하겠지만, 나는 바람을 맞으며 편안한 복장으로 즐기는 자전거 타기가 그립다. 언젠가 나의 어린 손주가 좀 자라서 함께 간단한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는 할머니로 남는다면 좋을 것 같다. 달리다가 잠간 쉬어가는 동안 그저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함께 할 공감대가 있어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과 소소한 데 공감하고 함께 즐기고, 작지만 기분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삶은 부럽다.
‘자전거 탄 풍경’이란 그룹의 음악중에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란 노래가 있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이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들 삶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혹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관계를 만들고 영향을 끼치고, 행복을 주고, 더러는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면서 만들어지는 많은 조각이다. 마치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여 만들어가는 ‘퀼트’처럼. 내 인생이란 커다란 퀼트중 작은 한조각인 ‘자전거’란 단어와 ‘나’ 사이에 만들어진 멜랑꼴리를 오늘 잠시 생각해보며, 파스텔톤으로 그 조각을 색칠해 본다. 그 조각은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가진 많은 조각들과 이어지고 겹쳐지며 ‘나의 삶’이라는 하나의 퀼트를 완성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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