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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안중근 의사와 '동양 평화론'

함성택·문화회관 고문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일본 정치계의 거두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다. 그는 죽어가면서 총을 쏜 안중근 의사를 보며 "미련한 놈"이라 말했다고 한다. 반면 중국의 국부 쑨원은 거사 소식을 듣고 안 의사를 "동양에서 제일 가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러 경의를 표했다고 전한다.

이토는 조선인을 무시했고, 그 당시 일본 외상 카추라는 1905년 1월 을사조약을 주도한 후 "조선이 멸망한 것은 멸망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멸망한 것"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토는 틀렸고 일본은 큰 과오를 범했다. 조선인의 독립 의지는 강했고 이토의 동양평화론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19만 1602명이 의병에 참여했고 일본에 대항해 싸웠다. 이중 1만 7600여명이 희생됐다. 이토 역시 목숨을 잃었고 결국은 1945년 패망으로 일본은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이토를 도와 조선통감부 외교 고문을 했던 미국인 스티븐슨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장명환에 의해 처단되었다. 105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침략의 근성과 경제적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와 통역도 없이 국제법을 어기며 여순 감옥에서 처형된 안중근 의사는 오늘날까지 그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는 일본이 그들의 우월주의와 침략주의를 버리고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동양인들이 상부 상조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다.

이토가 쓰러진 하얼빈 역에는 안 의사를 추모하는 박물관이 있다. 그의 의로운 거사를 세계에 알리고 이토의 잘못된 일본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침략의 역사를 잊지 못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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