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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천년초의 겨울나기

이 재 숙 / 수필가

따스한 아침 햇살이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하다. 창밖으로 라일락이 푸른 잎을 달고 반짝이며 봄을 재촉하고 있는 것 같아 뜰로 나왔다.

가을에 심어 놓은 마늘을 다람쥐들이 모두 파헤쳐 놓아 하얀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호미로 흙을 파고 마늘을 다시 심어주었다. 그리고 낮은 고랑의 햇볕이 쬐는 도라지 밭을 살피다 엎드려 말라 있는 선인장을 보면서 온실이나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는 열대 선인장만 알고 있던 어느 날 조그만 선인장 잎 서너 개를 선물로 받은 것이 언제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L 권사님이 주신 선인장 추운 뉴욕 날씨에 잘 자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햇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잎의 반 정도가 흙이 덮이도록 심었던 게 10여 년은 족히 되었다. 기다림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사유도 담겨 있었고 기다린다는 것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위안이었다. 매년 봄이 되면 가슴 설레며 혹한에 혹시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선인장은 겨울이 오면 저 혼자 수분을 다 빼고 쪼글쪼글해져서 축 늘어져 땅에 납작 엎드린 자세로 제 몸을 낮춰 추운 겨울을 지낸다. 그러나 봄이 오면 땅속의 수분을 먹고 다시 살아나서 잎이 제법 통통하게 물이 올라 제 모습을 되찾아 간다. 그리고 잎의 끝자락에서는 새 순을 터 점차 번식해서 지금은 제법 크고 넓은 화분만큼 영토를 넓혀 가고 있다. 그렇게 3년 전 어느 늦은 봄날 처음으로 노란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사랑의 기쁜 열매였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그냥 행복했다. 가치에 연연하기보다 순수 그 자체가 좋았다. 폭설과 강풍이 몰아치는 겨울도 그렇게 잘 견디며 매년 더 많은 꽃을 선사하는 선인장의 생명력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이 강인한 다육식물은 지구상에서 150여 종류 이상이 자라고 있으며 애리조나.캘리포니아의 사막과 남미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등지에서 많이 자란다. 손바닥 선인장이 영하 30도의 혹한과 영상 50도의 혹서에서도 천년을 견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의 비바람을 꿋꿋이 견뎌낸 장승처럼 그 이름이 '천년초'라 했던가.

주로 관상용으로 즐기다 근래 와서 몸에 유익한 효능도 밝혀졌다. 다섯 가지 색과 효능을 지니고 있어 '오행초'라고도 부른다. 식이섬유 비타민C 칼슘 무기질 아미노산 등이 다량 함유되었고 친환경 건강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단다.

봄의 동면이 끝나면 번식을 위한 준비를 거쳐 여름에는 성장기를 가을에는 꽃이 진 자리에 빨간 열매를 맺어 성숙기인 겨울에 씨를 맺는다. 버릴 것 하나 없는 오행초의 효능은 잎과 줄기는 간과 관절염에 노란 꽃은 위장에 적색소 열매는 혈액순환에 흙색소 씨는 신장의 노폐물 제거에 백색소 뿌리는 면역증진 효능에 도움을 준다 하니 그 다양한 효능에 더욱 놀랍다. 또한 병충해에도 강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필요 없이 친환경 재배가 가능하다. 잡초만 잘 뽑아주면 거름도 필요치 않다.

언 땅에 납작 엎드려 겸손한 자세로 인내하며 겨울을 나는 천년초를 보며 인생을 반추해 본다. 오래된 잎일수록 가시도 많고 커서 팔과 손에 수없이 박혀서 난 상처는 꽤 오래간다. 꽃과 텃밭을 가꾸면서 투박해진 내 손을 본다 가시의 상처보다 말로 인한 상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오래 아프게 하지 않던가. 천년초를 가꾸며 인내와 겸손을 다시 배운다. 마음밭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침묵의 시간 속으로 겸손하게 한 해를 반성하며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각한다. 우리 모두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면서 2014년을 흘려 보내고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새해를 맞으라고 속삭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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