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여의다의 뜻
조 현 용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나는 '여의다'의 애절함을 왕방연이 세조의 명에 따라 단종을 영월에 유배시키고 돌아오며 지었다는 시 속에서 기억하고 있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있으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며 밤길 가는구나'라는 시이다. 어쩔 수 없이 명은 따랐지만 섬기던 임금을 유배시킨 슬픔이 느껴진다. 여의는 것은 다시 볼 수 없음에 더 슬픔이 간절해지는 아픔이다. 소리죽여 울며 밤새도록 흘러가는 물줄기의 느낌이다.
'여의다'가 죽음에 의한 이별을 나타낼 때는 주로 부모님을 잃었을 때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사용한다. 고통이 가득한 표현이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일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의다'를 딸 시집보냈을 때도 쓴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왜 딸을 시집보냈을 때도 '여의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딸과의 헤어짐이 그다지도 서글픈 이별이었단 말인가?
나는 딸을 여의었다는 말에서 자식과의 헤어짐이 보여주는 아픔을 느낀다. '여의다'가 주로 죽음에 의한 이별을 의미하는 어휘였다는 점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일은 완전한 헤어짐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시집간 후에 다시는 친정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 하고 '시집에 뼈를 묻으라'고 하면서 다시 돌아올 구실도 없애려 하였다. 딸을 여의는 것은 그런 애절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딸이 결혼해도 예전처럼 '여의는' 것이 아니다. 다시는 못 만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오히려 결혼하면 친정 곁에 사는 경우가 많다. 시집은 갔지만 만날 일도 많다. 아이를 맡길 때도 제일 편한 곳이 친정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에서 눈물도 적어졌다. 예전에는 신부도 친정 부모도 눈물이 많았다. 요즘 결혼식장에서는 웃는 신부들이 많다. 신부가 웃으면 딸 낳는다는 말도 있었는데.
요즘에 자식을 여의는 눈물은 오히려 아들이 군대를 가거나 자식이 유학을 가는 장면에서 자주 보인다. 다시 못 볼 것은 아니지만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려온다. 품안을 떠나가는 것이다.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아린 마음을 안다. 단순한 걱정도 아니다. 단순한 그리움도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애달픔이다.
오늘 TV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 눈물이 그치지를 않는다. 우리말 '여의다'의 의미가 그대로 마음에 전해졌다. 한국에 와 있는 결혼 이주여성들을 더 따뜻하게 돌봐주기 바란다. 멀리 계신 부모님의 그리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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