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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권의 줌인] 선택적 인지

권순희 박사

많은 이들이 천재들의 기억력을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망각은 인간이 가지는 다른 긍정적인 면이라고 느낀다. 그것은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망각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마치 옷과 같은 존재라고 임희택 학자는 역설한다. 그는 기억은 행복을 방해하며 잘 잊는 사람이 매일 새롭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고국 방문 때 아주 오랜만에 어릴적 배꼽친구를 만났다. 우린 늘 만나온 것처럼 허물없이 이런저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대화 중 그녀는 우리의 어릴적 또래들 중 한남자 아이의 짓궂은 행동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분개하고 있었다. 나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나와 그녀는 하나의 문제를 이렇게 아주 다르게 보고 생각하고 있구나’라며 우리의 아주 다른 점을 다시 한번 받아들여야 했다. 그 남자 아이는 입안의 더러운 음식물을 여자아이들의 옷에 뱉어버린다든가, 여자아이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나서 도망가 버린다든가 등등 그야말로 온갖 난잡한 행동으로 여러 여자아이들을 괴롭혔다. 그 남자 아이의 태도는 여학생들의 고무줄을 자르는 것 이상의 괴팍한 행동들이었다. 그렇지만 난 철이 들면서 그 남자 아이의 행동들에 큰 의미를 두지않고 잊었다. 즉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상 철부지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으며, 그들의 행동에 뭐 큰 의미가 있겠는가 가 나의 견해였다.

난 그 아이의 괴팍한 행동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토록 깊이 오래 동안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니….그녀는 서울대 오종석 교수의 심리학적 용어, ‘선택적 인지(Selective Perception)’에 따라 그 정보를 가슴에 30여년 동안 품고있었고 난 ‘선택적 기억상실자’ 처럼 그 남자 아이의 행동은 철부지 고무줄 끊어버리는 것 보다 좀 더 심했지만, 의미없는 하나의 철부지 장난이라 생각하고 아주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셀수도 없이 쏟아지는 일상 정보에도 우리의 뇌가 건강한 것은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망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대해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으로 필요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기억한다. 선택적 지각이란 매일 접하는 정보의 홍수를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 보유하는 것을 말하며, 이 행위는 상당히 주관적이라 할 수 있다.

광고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만들어내는 현 산업시대에, 우리는 하루에 약 1500개의 광고에 노출되며, 그 중에 약 76개의 광고를 지각하고, 또 그 중에 약 12개의 광고만 기억한다고 한다. 우리의 선택적 인지가 이루어져 극히 소수만 뇌에 저장되는 셈이다. 선택적 기억과 선택적 기억상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어느 심리학자가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출산의 고통을 잊고 다시 출산을 하는 것처럼 선택적 기억, 즉 선택적 기억상실 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해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좋은 일보다 고통스런 일들, 즉 실직, 질병, 이혼, 부모 형제 및 가족의 사망, 사고 등 엄청난 일들이 계속 일어나지만, 우린 선택적 인지로 그 고통스런 일들을 잊어버리고 매일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난 어릴 때 동생과 다투거나 형과 언쟁을 해도, 성인이 되어서는 친구나 동료들과 갈등으로 감정에 골이 나도 내가 먼저 다가가서 풀어버리는 경향이 많았다. 그것은 나 자신이 나쁜 정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긍정적인 것을 선택하고 지각하여 저장하고 나쁜 정보들을 내 기억에서 빨리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 대신 그때그때 써왔던 일기를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들여다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과거를 회상시켜 주는 도구인 일기장을 가끔씩 들여다보면서 철부지들의 심각한 일상이 되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재미있었던 추억의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일기장도 없었다면 나의 선택적 기억상실로 영원히 그런 심각했던 일들을 다시는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긍정적인 것을 선택하여 인지하고 기억하는 것은 나의 삶에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꼭 필요한 것 같다. 갈대처럼 연약한 인간이니까 서로 갈등하고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저 바보처럼 허허 웃으며 돌아서서 상대와 악수하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면을 취하고 부정적인 면은 빨리 지워버리는, 선택적 인지, 즉 선택적 기억상실이 우리네 삶을 더 활기차게 할 수 있다. 특히 종교, 인종간의 갈등이 심한 다양한 미국 사회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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