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불모지' 다운타운에 '한식 깃발'을 꼿다
타인종에게 우리식 순대·떢볶이·파전 대접
무조건 미국인 입맛 맞춘 퓨전요리는 안해
깻잎·배·막걸리 이용한 칵테일 인기 '짱'
애틀랜타 다운타운에는 2014년까지만 해도 한식당이 없었다. 하지만 2015년 '가자'는 과감하게 이곳에 도전했다. 송씨 3남매와 한인 바텐더의 합작품이다. 메뉴도 퓨전 한식이 아니라, 떡볶이와 순대, 파전을 스텐레스 식판에 담아 내놓는다.
▶'한식을 파는 멋진 바 열자'
'가자'는 한인 청년들의 '술 생각'에서 시작됐다. 바텐더 팀 송과 주방장 앨런 서씨는 4~5년 전 겨울 애틀랜타의 한 바에서 술을 마시다 한국음식이 간절하게 생각났다고 한다. 송씨는 "당시 짜장면이랑 떡볶이 생각이 간절했는데, (한인 밀집 지역인) 도라빌이나 둘루스까지 운전해 올라가기는 싫었다. 우리가 게을러서 아예 한식당을 만들기로 했다"며 웃었다.
서씨는 애틀랜타 고급 일식당과 남부식 음식점 등에서 이름을 날린 요리사다. 송씨는 10년이 넘는 바텐더 경력에 음식전문 사진가로도 활동했다. 여기에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동생 대니 송, 제니퍼 송씨가 가세했다. 이렇게 서씨와 송씨 3남매가 힘을 합쳐 수년간 준비한 한식당이 '가자'다.
▶'죽'으로 시작
막상 한식당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지만, 타인종들이 한식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서씨는 "우리가 어릴때만 해도 타인종 친구들은 한식을 몰랐다"며 "우리 집에 김치와 생선들로 가득 찬 냉장고가 따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이들은 '팝업 식당'을 먼저 시도했다. 고정된 영업장이나 시간을 정하지 않고 때마다 카페나 식당 등의 한켠을 빌려 음식을 파는 형태의 식당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으로 위치를 알리고 사람을 모았다.
첫 메뉴는 한국식 죽이었다. 서씨가 죽에 김이나 야채 등 건더기를 넣고 직접 만든 소스를 사용해 맛을 냈다. 그는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미국인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며 "한식 특유의 편안함이 타인종들에게도 따뜻한 감동을 줄 수 있을거란 예상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퓨전은 없다
'가자'는 타인종이 주 고객이지만, '코리안타코'같은 퓨전 한식은 없다. 주방장인 서씨는 "요리는 새롭고 재미있어야 한다. 우리 음식은 '전통 한식'은 아니지만 '정통' 한식"이라고 말했다.
떡볶이는 굵은 가래떡을 짧게 썰고, 파전은 남부 전통 축제음식 '퍼넬 케이크'처럼 윗 부분을 부풀려 바삭함을 강조했다. 서씨는 모든 메뉴를 재료부터 직접 만든다. 떡볶이에 사용하는 떡은 쌀가루를 빻아 뽑고 순대도 직접 속을 채운다. 유행을 타거나 장난스럽진 않지만, 익숙한 한식을 새롭고 신선하게 재해석했다.
식당 리뷰사이트 '옐프'에 평을 올린 마크에이(Mark A)라는 고객은 "퍼넬 케이크 같은 파전을 먹었는데, 새콤한 한국 소스에 찍어 먹으면 별미"라며 "메인 요리는 도시락 박스 같은 판(식판)에 나왔는데 닭고기, 갈비에 김치, 콩나물, 완두콩이 아주 맛있었다. 다음엔 보쌈을 먹어볼 생각"이라고 호평했다. 또다른 고객 엘리스피(Elise P)는 "벌써 두번 갔는데, 갈비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만두나 매운 돼지갈비도 맛있지만, 갈비때문이라도 꼭 가야한다"고 말했다.
▶클래식 칵테일, 한국식 트위스트
'가자'의 내부장식은 뉴욕의 지하철과 한국의 교실을 섞어 놓은 분위기다. 현대적 느낌의 미국식 주점이지만 테이블에는 한국 교실에서 쓰는 나무 의자가 놓여있고, 곳곳에 한글이나 한국식 장식이 설치돼 있다.
송씨는 독특한 한국식 칵테일을 직접 개발해 내놓고 있다. '소닉 리바이버 #2'는 진, 앱신스, 시트론에 깻잎 즙을 짜 직접 만든 시럽을 섞는다. 여기에 칵테일 장식으로 깻잎 한장을 올린다. '하바나 어페어'는 배맛 브랜디와 알로에 리쿠어, 막걸리를 섞고 한국 배를 올렸다. 그는 "클래식 칵테일에 한국적인 맛과 향을 첨가했다. 칵테일 이름은 나와 앨런이 좋아하는 밴드들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고 말했다.
▶펑크 락에서 한식으로 귀환
송씨와 서씨는 성인이 된 후에는 한인타운과 떨어져 살았다. 애틀랜타 도심으로 이사해 펑크 락 음악에 빠져 살았다. 덕분에 애틀랜타의 소규모 공연장과 바를 섭렵했다. 덕분에 한인 친구들은 별로 없었지만, 한식에 대한 사랑만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이들은 한식 전도사가 됐다. 송씨는 "타인종 가운데 한식을 먹어보고 싶지만 어떻게 먹는지 모르고, 한인 직원과 말이 통하지 않아 포기했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 '가자'는 타인종 고객들이 부담없이 친구를 데리고 오거나, 혼자 와서도 편히 한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애틀랜타=조현범 기자
작년부터 한식당 하나 둘 생겨…20~30대 백인들 잦은 발길
최근 10년간 애틀랜타 다운타운에는 한식집이 없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 한식당이 있었지만, 한인들의 외곽 지역 이주로 함께 옮겨갔다. 한인상권도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정작 도심에는 한식당이 사라진지 20여년 가까이 됐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애틀랜타 도심에 한식당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애틀랜타 '폰스시티마켓'에 김치찐빵 전문점 '심플리 서울'이 문을 열었고, 인먼파크에는 한국식 노래방과 한국식 구이집이 들어설 예정이다. 고급 컨셉의 한식 프랜차이즈 스테이크집 '브레이커스'도 다운타운 개점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한식당의 공통점은 도심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하는 젊은 백인 중산층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재개발 지역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음식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한식을 '쿨'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김치 전문점 '심플리 서울'의 해나정 대표는 "유행을 선도하는 20~30대 백인 중산층들이 한식에 열광하고 있다. 한식 붐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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