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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에세이] 마크 트웨인, 샌프란시스코 시절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원래 그곳에서 자리를 잡으려던 마크 트웨인은 직업을 잃고 서부로 이주하여 버지니아 시티에서 2년간 기자로 일을 한 후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그의 전기를 보면 1864년부터 2년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에 대한 기록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는 이 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상을 적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추운 여름을 보냈다.”라고. 사람들은 보통 캘리포니아라고 하면 뜨거운 태양, 구리 빛으로 잘도 익은 젊은 여인들, 맑은 하늘과 따듯한 날씨를 연상하고 샌프란시스코는 무슨 낭만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도시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여름 내내 샌프란시스코만으로 몰려드는 짙은 안개, 이 안개가 동반해 몰고 온 오싹거리는 냉기는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 체험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막 트웨인이 느낀 추위는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깊은 우울증으로 인해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가 나이가 많아 노인성 우울증으로 고생한 이야기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그는 자주 밝히지 않았을 뿐이지 평생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집념을 지니고 살았다. 그가 사람들을 웃기는 유머리스트였으나 그의 속마음을 달랐다. “모든 인간을 비참한 존재다. 유머의 비밀 원천은 즐거움이 아니라 슬픔이다.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

네바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왔을 때 그는 이미 우울증에 싸여 있었다. 그런 때문인지 그는 기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기자 재질이 없었다. 그래서 기자로서 한 일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가십이나 기사감이 되지 못하는 아무런 흥밋거리가 되지 않는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을 뒤져 기사화한 것이다. 그의 기사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지루했고 자신은 기자로서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신문사에서 사직을 하고 넉 달 동안 빈둥거리며 살았다. “나는 벌레보다도 못한 저질이며 비열한 자가 되었다.” 그는 기자란 직업을 포기했다. 대신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러다가 다행하게도 ‘캘러베라스 카운티의 개구리 뛰기 경쟁’이란 이야기의 소재를 얻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기 마지막 시절 그는 형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한 단계 낮은 유머 작가로.”

1866년 어느 날, 31세의 마크 트웨인은 시내 중심부 서터와 몽고메리 사이에 위치한 옥시덴탈 호텔 (1906년 대지진을 파괴되었음)이란 고급 호텔에 투숙한다. 거기서 정장을 한 채 피스톨을 뽑아 자기 머리에 겨누었다. “나는 피스톨을 겨누었지만 방아쇠를 당길 만한 남자다운 용기가 없었다. 후에도 자주 내가 그때 자살에 실패한 것을 후회하곤 했다. 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내 행동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다. 자살이란 젊은이나 노인을 막론하고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건전한 행위로 본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총을 머리에 겨누었을 때 그는 미국 문학의 미래에 총을 겨눴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그를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자살에 대한 집념은 어려서부터 보인다. 11세에 엄격하던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했을 때 그는 열쇠 구멍으로 그의 부검을 살폈다. 헨리란 형이 증기선 폭발 사고로 다쳐 병상에서 죽어갈 그는 그 곁에 있었다. 그는 자신이 형의 직업을 마련해 주었고 또 사고 전날 형이 타는 증기선 선장과 안전문제로 다툰바 있어서 형의 죽음을 오랫동안 자기 잘못이란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다.
문학 작품에서도 본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은 동네 친구들 몇 명과 동굴에 들어갔다가 며칠 후에 살아 돌아온다. 집에 오니 벌써 그의 장례식이 진행 중이었다. 살아 있던 친구들 여친들, 특히 고모들이 서럽게 우는 것을 보면서도 톰을 그들이 골치 덩어리 하나가 없어져서 즐거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허클베리 핀’에서도 주인공은 자기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소문을 퍼트린 후 사람들이 시체를 찾겠다고 수색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런데 그들은 수심이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여보시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1866년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그는 동부로 이사해 거기에 정착해 살았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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