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장미꽃 가시
이 재 숙 / 수필가
따뜻하기만 했던 작년 가을 나무들 가지치기를 할 새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추위와 눈 폭풍으로 겨울나기에 여유도 없이 보냈다. 봄이 오니 마음도 서서히 녹고 있다. 매년 늦가을에 하던 가지치기를 하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해 주어야지 싶어 50도가 넘는 따뜻한 날씨를 택해 과일나무들과 철쭉 장미나무들 가지치기를 해 주었다. 자연과 함께하면서 소리 없이 행하는 사랑의 교훈을 배우게 했다. 큰 나무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나무 전문 관리회사에서 전문가가 진단을 하고 끊어주고 잔가지치기도 해 주었다. 그동안 계속 심은 장미도 있지만 넝쿨장미도 색깔 따라 있어 정원을 가꾸면서 장미는 물이 잘 빠지고 공기 유통이 좋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는 것도 대개 6시간 이상 햇빛이 요구되며 온도는 섭씨 18~20도에서 잘 자라며 꽃은 봄과 가을에 풍성하게 피었다. 더운 한여름 30도가 넘으면 꽃이 잘 피지 않는다. 바나나 껍질이 장미 거름이 되기도 한다. 껍질을 모았다 잘게 잘라서 흙과 섞어서 장미나무 주위에 흙을 덮어주면 꽃이 더 많이 흐드러지게 피는 지혜도 터득했다.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지 않나. 분홍 넝쿨장미는 뒤뜰에서 많은 꽃을 아름답게 피우지만, 옛 주인이 심었던 것이라 제법 큰 둥치가 너무 억세어서 가까이 가기도 어렵고 또 큰 가시가 많아 위험해서 가지치기는 쉽지 않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 옷도 두꺼운 것으로 무장을 해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한다. 그래서 한 번씩 가시에 찔려 고통을 당한다. 손에 가시가 박히고 아픔을 참으며 가시를 빼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장미꽃 그러나 해충이나 동물들로부터 제 꽃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품은 날카로운 가시는 남에게 아픔과 고통을 준다. 장미를 사랑한 시인 릴케가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이민 초기 '장미꽃 가시' 란 별명이 생각났다.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언제나 긴장하며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온갖 인종들 틈에서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신경은 곤두서 있었고 지나칠 정도로 원리원칙을 고집하며 까다로운 성격은 장미가시 같았다. 아니 그게 바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무서운 가시를 품고 여차하면 찌를 기세로 커져 그 가시로 남을 찌르기도 하고 가끔 자신이 찔리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가 우리 몸에 들어와 고통을 주기도 한다.
사순절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시편 119: 71절을 읽으며 마음속에 있는 나쁜 것들을 다 내려놓고 평안한 마음으로 참회하면서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나무들 가지치기를 하면서 잘려나간 가지의 아픔도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으로 많은 과일을 풍성하게 열리게 하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서 잘린 가지들도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장미가시가 제 몸을 보호해야 아름다운 꽃도 피울 수 있지 않을는지. 꽃 중에 왕, 장미는 아름다운 꽃과 백 리까지 향기를 풍긴다는 꽃이 얼마나 감사한지. 욕심과 교만의 목걸이를 벗고 바람같이 가볍게 살아야겠다고 이 사순절에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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