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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한국어 속의 특별한 문화

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 에스키모의 언어에는 '눈'에 해당하는 어휘가 많음은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내리는 눈'과 '쌓인 눈', '집을 짓는 눈'에 대한 명칭이 다 다르다고 한다. 이는 눈이 에스키모의 문화에서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한국어에서 '눈'은 굳이 보자면 '서리' '진눈깨비' 정도만이 새로운 어휘로 나타난다. '싸리눈, 가루눈, 함박눈, 숫눈, 포슬눈' 등은 '눈'의 종류일 뿐이다.

한국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풍부한 표현을 갖고 있는 것은 '벼'에 해당하는 어휘다. 한국어에서는 '모, 벼, 쌀, 밥, 뫼' 등의 표현으로 구분하여 나타난다. 영어에서는 'rice'로 나타난다. 다른 언어에서도 한국어처럼 다양하게 분화된 표현을 갖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국 사회에 농경 사회라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어휘라고 할 수 있다. 농사에 해당하는 어휘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씨는 '뿌리고' 모는 '심는다'. 이렇게 뿌리는 대상과 심는 대상은 다르다. 콩은 어떤가? 감자는 어떤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병명을 높게 부르른 경우다. '마마'는 원래 임금 등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었으나 '천연두' 혹은 '두창(痘瘡)'을 부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홍역을 '작은 마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천연두는 '손님'이라는 말로도 불렀는데 이는 잘 대접하여 보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어 표현을 보면 병을 두려워하고 경외시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즉, 병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달래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신라 향가 중 '처용가'를 보면 병을 뜻하는 역신에게 '본디 내 것이지만 앗아감을 어찌하리오'와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타난다.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물러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역신을 병으로 보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병을 물리치려 하지 않고 달래려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처용가의 마무리도 역신이 처용의 태도에 감복하여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김태곤 교수의 '한국무속신화'를 보면 강원도 동해 지역 무가와 전라도 고창 지역 무가 중에 '손님굿 손님풀이'가 나온다. 무가에서는 천연두를 '손님네'라고 하고 손님네가 들면 지극 정성으로 모셔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가에서 손님네는 연지함을 들고 다니다가 정성이 지극하면 연지로 얼굴을 곱게 만들어 주고 지성이 지극치 않은 집은 먹 점과 푸른 점을 찍어 얽게 만든다고 하고 있다. 마마는 잘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국어의 '병이 낫다'라는 표현에서 '낫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병이 완치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이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병이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져야 병이 나을 수 있다. 한국어는 병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어에서는 자연을 존중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한국어에는 농경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어휘가 많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문화를 깊이 알고 싶다면 한국어에 관심이 더 가져야 한다. 한국어에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가 그대로 녹아 있다. 하지만 슬쩍 훑어 지나가서는 문화를 살펴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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