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남 칼럼] 갈릴리 호숫가 마을들과 역사이야기
예수님의 사역과 깊은 관련이 있는 대표적인 마을 중 하나인 갈릴리 호수가 디베랴에 우리 일행은 여장을 풀었다. 당시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라 갈릴리의 수도로 삼은 도시이다.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프스는 디베랴를 갈릴리의 가장 비옥한 땅에 인접한 도시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디베랴는 아름다운 로마의 도시로 발전했다. 그후 이스라엘과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정신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의 호수 물은 항상 깨끗하며 주위는 늘 온화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다. 늪지대가 없는 청명한 물에 고운 모래밭을 갖고 있으며, 물고기가 서식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호수다.
지금의 디베랴는 2000년의 역사적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필자가 30년전 이곳에 왔을 때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네온사인이 번쩍이며 온갖 상점들과 관광객들이 거리를 메우고, 밤인데도 갈릴리 호수에는 떠다니는 유람선과 배들이 많이 보일 정도로 큰 도시로 발전했다.
어제의 피로를 풀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아침 기도를 한 후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와 관련된 찬송가를 합창하며 호수 남쪽으로 향했다. 호수에 떠 있는 배들과 하늘의 구름, 길가 좌우와 언덕에 벌써 피어 있는 꽃과 나무들을 보니 너무나 목가적이고 아름다웠다.
계속 달려 남쪽 끝 자락에 있는 이스라엘 최초의 키브츠 집단마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곳은 6일전쟁 때 국방장관이었던 유명한 모세 다얀이 자라고 살았던 키부츠였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골란 고원에서 1500여대의 시리아 탱크 부대를 쳐부수고 그의 휘하의 이스라엘 군은 옛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처음 당도했다. 그리하여 애꾸눈 다얀 장군의 이름은 하늘을 찔렀고, 이스라엘 군에서는 그의 부대로 오겠다며 소속 부대를 이탈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그의 딸은 여느 이스라엘 군인들과 같이 싸우다가 전사했다.
벌써 우리들이 탄 버스는 동쪽으로 가다가 향하다가 어느새 높은 고지를 오르고 있었다.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속도도 느려졌다. 우리들이 지나가고 있는 곳은 평균 해발 1000m가 넘는 골란 고원이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해 이 고원을 점령했다. 가는 도중 그때 당시 싸우다 아직까지 버려져 있는 망가진 탱크를 볼 수 있었고, 싸움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대가 높아 주변지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약 6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북쪽을 향해 가던 중, 눈 덮인 헐몬산이 보이는 곳에 내려서 그곳의 지형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바로 계곡 건너편에 현재 중동에서 가장 비극적인 전쟁으로 많은 난민이 발생해 유럽을 떠돌고 있고, 정부군과 반군 ISIS, 그 배후에 미국과 러시아가 얽힌 시리아가 있다.
우리들은 한국에서 북한의 핵 도발로 미국과 배치를 논의중인 미사일 방어망 사드의 모습과 각종 방공부대, 산 정상에 설치된 전자장비의 안테나들, 또 이곳을 관리하는 이스라엘군의 차량과 군인들을 보았다. 더욱 북쪽으로 가면서 지중해 동해안에서 가장 높은 2814 m의 눈 덮인 헐몬산이 가깝게 보이는 곳에 당도했다. 이곳도 골란고원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 합병되었다. 겨울에는 유일하게 스키를 타는 곳이기에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한다.
헐몬산은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해 시편과 아가서에서 시로 읊어 지기도 하였다. 성지 순례를 왔다가 이스라엘 독립 후 생존을 위한 전쟁으로 얼룩진 곳을 보니 두고 온 나의 조국 한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울러 이스라엘 민족의 강한 신앙심과 신념이 그들을 지키는 힘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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