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어줍잖은 충고'는 이제 그만
이계숙/자유기고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피자다. 그리고 국수다. 하루 세끼, 국수를 먹으라 해도 싫다 소리를 안 할 정도로. 또한 촌스러운 내 외모에 걸맞게 김치를 좋아한다. 도시락으로 김치랑 밥을 매일 싸가는데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도 거의 김치와 밥만 먹는다. 그리고 라면. 외식을 해도 고기나 채소보다 밀가루나 쌀이 들어간 걸 선호한다. 몸무게를 제일 많이 늘린다는 탄수화물로 매일 삼시세끼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 죽어라 운동해도 효과가 있겠나.
밥으로 도시락을 싸가는 거야 다른 음식으로 대체할 만 한 게 없으니 계속하기로 하고 일단은 저녁을 라면과 밥에서 탈피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래서 성공했냐고? 아니. 못했다. 탄수화물을 안 먹는다는 것, 보통 의지갖고는 되는 일이 아니어서 사흘하다가 집어치웠다. 우리 선조들은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었다. '작심사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 까짓 것'하고 호기롭게 시작한 결심이 딱 사흘째 가서 무너지고 만 것이다. 도대체가 탄수화물 빼고는 먹을 게 없는 것이다.
첫날 저녁은 채소에 닭고기(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닭고기다)를 먹었다. 둘째날은 슴슴하게 만든 김치찌개만 한 대접 먹었다. 밥을 두어 숟가락 말았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지만 눈 질끈 감았다. 그리고 셋째날은 남편 해주고 남은 스파게티 소스를 국수도 없이 한 대접 먹었다. 그리고 나흘 째 되는 날, 아무리 둘러 봐도 먹을 게 없었다. 남편 먹으라고 아침에 만들어 놓은 카레랑 고슬고슬하게 지어놓은 밥밖에. 몇번을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지인이 만들어준 '고들빼기 김치'에 눈이 가자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버렸다. 밥 한 양푼에다 고들빼기 김치 한 접시로 사흘동안 주렸던 배를 채운 것이다.
여지껏 나는 어떤 '중독'이 없다는 걸, 반드시 중단하거나 고쳐야만 할 나쁜 습관이 없다는 걸 큰 자랑으로 삼고 살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마구 닥달도 했었다. 담배 못 끊어 고심하는 할배들한테 '의지박약'이라는 막말을 서슴치 않았고 틈만 나면 카지노로 향하는 몇몇 지인들을 '노름꾼들'이라고 마음놓고 비웃었고 뒤룩뒤룩 살 찌는 직장 동료들을 미련하고 게을러 터졌다고 한심해 했었다. 단 한번도 그들 사정을 헤아려보지 않았다.
이번에 알았다. 어줍잖게 남의 일에 간섭하고 충고하고 가르치려 들었던 내가 참으로 교만했다는 걸. 남의 말 쉽게 할 게 아니다. 남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함부로 그 사람 사정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미국 속담을 직접 체험했다. 앞으로는 왜 그 쉬운 것도 못하느냐고 함부로 말 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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