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점봉 기자의 타임머신]시카고 만국박람회를 가다
<1893>
전 세계 96개국이 참석하고 6백 에이커의 대지 위에 거대한 박람회 건물 6개동을 비롯해 6개월간의 대회 기간 중 전세계에서 2천8백만 여명이 관람했다는 통계 자료만 보더라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시카고 인구는 1백50만 명이었다. 만국박람회는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후, 시카고에서는 일명 시카고 만국박람회(CHICAGO WORLD'S FAIR)라 불렸으며 1876년 필라델피아에 이어 세인트루이스를 거쳐서 미국에서 개최된 박람회로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지 400년이 되는 1892년보다는 1년이 지난 후에 열리게 됐다.
4만 명의 근로자가 박람회장 건물들을 완공하는데만 2년이 걸렸으며 미시간 호숫가에 인접해 있는 잭슨 팍을 끼고 컬럼버스 배의 상징적 조형물을 중심으로 박람회장을 조성한 것. 이 곳은 다운타운으로부터 7마일 남쪽에 위치한 곳이었으며 시카고 대학과 인접한 지역이었다. 당시 클리브랜드 대통령이 참석해 박람회 전체 건물의 전기 스위치를 누르는 개막 이벤트가 열렸으며 개막식에서만 30만 명의 관람객이 성황을 이루었다.
건물들은 연방정부관을 비롯 일리노이관, 농업관, 과학관,교통시설관 등으로 명명되었고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나 헨리 포드 등 당시의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른바 20세기를 앞두고 전세계 관람객이 한자리에 모여 "멜팅 팟(MELTING POT)"을 이뤘다는 역사적 의의가 부여되고 있다.
이 성대한 행사에 고종이 보낸 대한제국의 칙사들이 KOREA를 대표하는 한국의 전통 물품들을 전시했으며 이 전시품들이 지금도 시카고 필드 뮤지엄에 엄연히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 의미로도 매우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점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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