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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정 칼럼] 회색분자

친구가 걱정이 있다며 내게 물었다. 아들이 자신과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데 어쩌면 좋겠냐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며 잘 생각해 보란다. 가정까지 해서 생각을 하라니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친구에게 그런 건 잘난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제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사람한테 갑자기 머리 아픈 방정식 풀라고 하냐며 대답을 사양했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이 참 똑똑하지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야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내가 어리석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젊었을 때는 잘나지도 않은 주제에 잘난 척도 많이 했다. 원래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 많다. 어리석다는 것을 뒤늦게라도 깨닫게 된 것이 감사하다.

나의 똑똑하지 못함은 여러 가지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지혜로워진다는데 내 경우는 그렇지도 않으니 답답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중요한 일에 대해 물을 때도 먼저 살아온 지혜로 해줘야 할 ‘해답’이 내게는 없다. 내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확신에 차서 선택했지만 아니었을 때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확신 없는 길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결과가 있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변수를 가진 삶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살다 보니 사람의 확신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이 못 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자식들의 중요한 일에 확실한 말을 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숱한 정보와 지식 속에서 사는 자식보다 더 아는 것도 없이 섣부른 방향 제시를 하는 것이 위험한 것 같아 경험과 의견을 충분히 나누는 정도로 그치고 선택은 자식들에게 맡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식들의 인생까지 지휘할 자신도 없거니와 인생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어차피 자신의 몫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족한 걸 증명이라도 하듯, 확고한 주관이란 게 별로 없다. 죄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옳은 것 같다. 사람들이 ‘내 사전에 절대 이러저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도 수없이 벌어지고 있고, 절대적으로 있어야 할 것도 없는 것이 많으니 내가 생각하기에는 ‘절대’란 것도 의미가 없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사소한 일’에도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다니 말이다. 나의 경계선은 법이나 도덕적으로 죄 짓는 것이 아니고 나와 누군가의 몸이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대부분은 거기까지다. 경계선이 이처럼 광범위해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흑백(?)의 경계선이 모호해서인지, 친구들끼리 의견이 나뉘면 양쪽 다 맞는 말이라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나를, 친구는 비겁한 ‘회색분자’라고 했다. 다 맞는 것 같다는 것은 진심이고, 지금도 꼭 필요하지 않은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 일리가 있기도 하고 또한 생각이 다르면 서로 다르게 살아가면 된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한 것이다. 정말 이상한 건, 다르게 살아도 서로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언성을 높이고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다. 국익이나 개인 재산상의 문제가 걸린 ‘큰일’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회색분자라면 앞으로도 나는 계속 비겁한 ‘회색분자’가 될 것 같다. 늘 웬만한 것은 다 맞는 것 같은 불분명한 멍청함도 여전하고, 각자 법과 질서를 잘 지킨다면 서로 다르게 살아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은 생각에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건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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