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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김 태 숙 / 자유기고가

몇 해 전 신문이나 TV뉴스를 통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회항 갑질 사건은 이미 오래된 고전으로 남을 법한 얘기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세상은 갑이니 을이니 하면서 공공연하게 있는 자들의 꼴값들을 명리학의 천간 시작인 '갑'을 앞세워 엄청난 힘의 대명사처럼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갑'의 등장은 TV 뉴스나 드라마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 일상생활 속에 깊이 침투하여 너도나도 '갑'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것 같다. 있는 자가 없는 자의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겠는가. 요즘은 내가 없으면 남의 것이라도 빌려서 갑질을 해대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고 있다.

나는 인생 이모작을 꿈꾸었는데 우연하게도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명한 P제과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원래부터 빵을 좋아해서 빵순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빵을 좋아하는 나는 환갑의 나이가 되어 체력적으로 힘이 딸리기는 했지만 100세 시대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빵을 만드는 일이라 가슴이 떨리기도 했고 여가 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K는 성격이 좋아 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늘 밝게 웃으며, 나에게도 친절하게 트레이닝을 시켜주던 K가 어느 날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연인즉슨 P제과 매장에 직원 전용 구역이 있어 일반 손님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데, 어느 손님이 케이크를 주문하면서 제한구역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K는 이곳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나가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손님은 오히려 서비스 정신이 안 되어 있다며 심한 욕설과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 어쩌면 목소리가 큰 K의 말투가 거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자기는 매장을 관리하는 부서의 높은 사람 아무개의 부인 친구가 된다며 한바탕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부서에서도 알게 되었고, 결국 K는 부서의 높은 분으로부터 손님께 정중히 사과하라는 공문을 전달 받았다. 그러나, "네가 이 정도밖에 안 되니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이라며 심한 굴욕적 언사를 들어야 했던 K는 사과보다는 일을 그만두는 쪽을 택했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지각없이 설쳐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우리 주변엔 지력이나 재력, 또는 권력, 체력 등등 자기보다 월등한 사람들의 틈에 끼어 흉내라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특히 개인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단체에서는 갑-을 관계 형성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결국 K는 일을 그만두었고, 나는 무척 섭섭하고 씁쓸한 기분을 맛보았다. 상대방 인격은 고사하고, 자신의 행동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막말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기 싸움에서라도 지고 싶지 않다는 열등감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갑질 아닌 갑질이 아닌가 싶다.

생각 없이 덤벙덤벙 날뛰는 망둥이는 같은 종족끼리도 잡아먹는 습성이 있어 같은 망둥이 살로 만든 미끼에 잘 걸려들어서 '꼬시래기 제 살 뜯는 듯하다'라는 속담도 있다. 망둥이는 극한대를 제외한 지구상 모든 곳에서 서식하며 식욕도 왕성하다고 하는데, 본능적 욕구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인간과 닮은 구석이 참 많은 것 같다. 천간 십간의 첫 번째로 시작되는 '갑'은 당연히 변할 수 없는 순번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갑'의 뜻은 따뜻하고 인정 많으며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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