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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세상 보기]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부른건 꽤 오래된 일이다. 원래 중국에서 전해온 사자성어인데 파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한국가을하늘만 첨벙 뛰어들고 싶도록 높아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가을에 말이 살찌는 이유에 대해선 설이 많다. 가을은 앞으로 1년간 먹을 곡식을 거두는 중요한 시기이다. 전쟁을 벌이기는 커녕 하던 전쟁도 멈춰야할 판이다. 전쟁에 주로 쓰이는 말들도 놀고먹다보니 피둥피둥 살이찌게 되었다.

네 계절중 제일 풍족하다 보니 걱정도 따른다. 중국의 고대역사서인 <한서漢書> 의 <흉노전(匈奴傳)〉에 보면 ‘천고마비’의 철이 되면 북쪽의 흉노족이 쳐들어 올까봐 언제나 전전긍긍했다는 기록이 나온단다. 약탈을 업으로 삼은 야만족이 일을 벌이기엔 추수다음이 최고인데 날씨까지 쾌창하니 ‘일하러 가기 좋은 계절’이다. 이렇게 천고마비는 풍족하며 활동하기도 계절을 뜻하는 말로 쓰여왔다.
당나라의 대시인 두보(杜甫)의 할아버지였던 두심언이 전쟁터에 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며 쓴 시에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귀절이 있는데 같은 뜻이다. 북방의 전쟁터에 나가있는 당나라군대가 하늘은 파랗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날씨같이 순조롭게 승전을 거두기를 소망한 것이다.

천고마비는 그렇다치고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왜일까?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고 쾌적하다. 둘째, 추수가 끝나고 마음이 넉넉하다. 셋째, 쓸쓸한 가을감성이 책읽기에 적절하다. 넷째. 분주한 가을에 저조한 책매출액을 만회하려고 출판업계에서 퍼뜨린 말이다(!). 심지어는 일제강점기중이던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처음으로 가을과 독서를 엮어버렸다는 설도 있다. 살수있는 책이란게 다 일본책일뿐이니 돈도 벌고 조선인도 일본문화에 동화시키겠다는 속셈이었다.

둘째와 셋째는 왠지 모순인 것 같고 넷째는 씁쓸한데 다섯번째는 조금 놀랍다. 서기 105년 중국한나라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는 대나무로 만든 죽간이나, 파피루스(Paper와 Bible의 어원), 양피지, 점토판 따위에다 기록을 남겼었다. 그런데 대나무도 식물인지라 봄에 죽순이 나고 가을에 다 자라면 거두어져 죽간을 만들었던가보다. 먼 옛날엔 새로 책이 만들어지는 계절이 가을이었다는 학설이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서 부모님께 입은 은혜 중에서도 어렸을때 책을 많이 사주신데 특히 감사드리고 싶다. 초등학교때는 어린이잡지도 한동안 구독을 시켜주셨는데 부담이 적지않았을 것이다. 이름부터 토속적인 느낌의 <어깨동무> 가 오른편, 접하기 힘든 외국만화를 많이 소개했던 <새소년> 이 왼편에 있었다면 내가 구독한 <소년중앙> 은 뭐랄까 중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잡지이름 때문인가? 아무튼 지금 미주중앙일보에 컬럼을 쓰게 된것도 소년중앙과의 인연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 세 어린이잡지들은 제대로 된 잡지답게 읽을 거리 즉 기사가 많았다. 교양기사나 뉴스 외에도 네스호에 산다는 괴물 네시나 히말라야의 설인 예티, 캘리포니아 북부 깊은 산중에서 발견된다는 빅풋 또는 사스콰치, 들어만 가면 실종된다는 버뮤다 삼각지대 등이 어린이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록도 정말 훌륭했다. 간단하지만 근사한 과학실험도구나 신기한 장난감이 나온다는 달은 기다리기 힘들어 부모님께 재촉도 많이 했다.

격조높은(?) 세 어린이교양잡지에 실린 만화의 비중은 크지않았다. 그런데 80년대초에 어깨동무의 만화별책부록에 불과하던 <보물섬> 이 독립된 잡지로 나오면서 판도가 급격히 바뀌었다. 읽을 것은 없고 베개만한 두께를 온통 만화로만 채운 신세대잡지들의 인기는 곧 기존의 세 잡지를 압도하였다. 결국 어깨동무 폐간 (1967-1987년), 새소년 폐간 (1964-1989년), 그리고 소년중앙의 폐간 (1969-1994년)이 이어졌다. 가을이 되니 내 마음을 키워주었던 고마운 책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글 내용에 관한 문의나, 다루어졌으면 하는 소재제안은 [email protected]으로.



최영출 (생명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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