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수 칼럼] 강 건너 불구경
“야 이거 세상 돌아가는 꼴이 왜 이 모양이냐.”“넌 그저 잠자코 강 건너에서 불구경이나 해라.”
며칠 전에 한국에 있는 가까운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농반진반으로 나눈 대화다. ‘헬조선’이니 ‘이게 나라냐’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인터넷 댓글의 유행어가 되고 선장 없는 난파선이 거센 풍랑과 폭풍우 속에서 방향을 잃고 침몰하려는 형국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 에서 국가를 큰 선박에 비유하며 전혀 항해 기술이 없는 선원(선동 정치꾼)들이 항해술에 대해 역시 문외한인 선주(국민)를 술과 마약에 취하게 해놓고 서로 자기가 선장이 되어 배의 키를 잡겠다고 다투는 혼란한 사태를 예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전개되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플라톤이 마치 족집게 도사처럼 여겨지고 2천년도 훨씬 전 그의 정확한 예측에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게 나라냐’는 나라에 대해 모든 기대를 버리려 한다는, 아니 이미 버렸다는 체념이요, 비판이라기보다는 막가는 조롱과 비아냥의 언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구경 중에 으뜸은 불구경 아니면 싸움구경이라고 하지만 요즈음 국내 세태는 싸움박질 하는 곳에 불까지 싸지른 모양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이런 문구를 봤다. “싸움구경도 허니잼인데 다 죽자고 불도 질러주니 허니허니잼.” ‘허니잼’은 요새 10대들이 쓰는 SNS 신조어로 ‘꿀잼’이라고도 하는데 재미(잼)가 꿀같다는 말이란다. 나라의 위기를 빗대놓고 하는 조크로는 부적절하지만 이런 몰지각한 유머는 사태의 심각성의 징표다.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이런 막말도 하는가 보다. 불구경하면 네로황제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 대경기장의 매점에서 불이나 로마가 불더미에 쌓였을 때 네로가 흥이 나서 리라를 켜며 불구경을 했다는 이야기. 이 유명한 일화는 역사가 타키투스에 따르면 지어낸 이야기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영어의 관용구 ‘fiddle while Rome is burning’(로마가 불타는데 바이올린을 켜다)은 큰 재난 앞에서 무심하거나, 재앙과는 아무 상관없는 하찮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영어사전을 들춰보면 ‘내 집에 불났는데 노름에 미쳐 있다’라는 재미있는 의역도 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원래 36계 중 하나로 손자병법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한자로는 격안관화(隔岸觀火)로 “언덕을 사이에두고 불을 구경하라.”라는 뜻이다. 여기서 불은 적들 내부의 갈등을 의미한다. 가능하다면 상대방 내부 첩자들을 이용하여 적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것도 이 전략의 한 방법이다. 적의 내부가 분열되고 알력이 생겨 내부의 싸움으로 그들의 힘이 모두 소진되어 와해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이 상대방의 불행이나 갈등을 간섭하지 않고 그저 바라본다는 소극적인 뜻으로 쓰이지만, 격안관화는 적의 내분에 개입하지 말고 관망하면서 승리를 거둔다는 적극적인 전략이다. 혹자는 이것이 오래 전에 계획되어 목하 추진되고 있는 북한의 대남 통일전략이라고 한다.
불구경이나 싸움구경이 재미 있는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심리 저변에 잠재하는 사디즘에 그 근거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집이나 내 소유물이 아닌 나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것들이 화염 속에서 신나게 활활타는 것을 팔짱끼고 구경하는 것을 싫다할 사람은 많지 않다. 명절 때나 기념행사 때 불꽃놀이를 즐기는 심사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따져보니 내가 미국에서 사는지가 한국에서 산 날들의 거의 두 배에 가깝고 국적을 바꾼지도, 그리고 고향땅을 밟아 본지도 수 십년이 지났으니 불이 난들 어떠하고 물이 넘친들 어떠하랴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외국에 오래 살아도 수구초심(首丘初心)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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