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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닥터 부르스 리’

학교 선생 노릇을 하다 보면 별명 하나쯤은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중 고등학교 다닐 때 보면 거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별명 하나씩은 있었다. 선배들에게서 대물림한 것도 있고 신임 선생님들에게는 우리가 작명하기도 했다. 작은 키에 비해 두상이 커 보이면 ‘망둥이’, 인상이 으시시하면 ‘도깨비’, 수학 문제를 칠판에 풀다가 막혀서 쩔쩔매면 ‘엉김씨’, 코가 유별나게 크면 ‘코보’가 된다. 대학교 때는 별로 교수님들의 별명을 들어보지 못했다. 대학교수 하면 전문분야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소유하는 현인이라는 선입관과 그에 따르는 존경심 내지는 일종의 경외감 때문에 감히 별명을 붙일 엄두를 못내는 것 아닌가 한다. 박사님, 교수님에 어디 감히 별명을 거론할 것인가.

내가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아칸소대학에 신참 교수로 부임한 때다.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학생이 느닷없이 나를 보고 부르스 리(Bruce Lee) 닮았다는 말을 했다. 부르스 리라는 이름이 낯선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부르스 리(이소룡)가 무술의 고수인 중국계 미국인 배우이고 절권도의 창시자라는 사실은 차차 알게 됐다. 그 당시 부르스 리의 영화가 미국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한참 인기를 끌고 있을 때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웬 여학생이 나를 가로 막고 “당신에게 홀딱 반했어요(I have a crush on you.)”하는 바람에 몹시 당황하기도 했다. 그 날의 해프닝 이후에 학생들 간에 나는 ‘닥터 부르스 리’로 통하게 되었다. 박사학위에 곁들어 갑자기 이소룡의 전설적인 무술 실력 까지 갖게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이소룡에 대해 더 알아보고 그의 영화도 한 편 보았다. 또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서양 사람 눈에는 닮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해가 가면서 ‘닥터 부르스 리’라는 별명이 대물림을 하다 보니 내막을 모르는 학생들이 나를 무술의 달인으로 착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내게 무술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을 하는가하면 무술시범을 보여달라고 해서 나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때로는 내 강의 과목보다 무술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진작 태권도나 합기도를 익히지 못한 것이 아쉬웁기도 했다. 부르스 리의 격투기 기술은 아니더라도 한국 무술에 대한 제한된 홍보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부르스 리의 인기와 명성이 다소 부럽기도 했다. 알고 보니 부르스 리는 생일이 나보다 한 달 늦을뿐 나와 동갑내기였다. 속으로 슬며시 비교를 해 보았다. 한국과 미국 통틀어 10년 가까이 대학에서 책과 씨름하며 조교수 자리 하나 얻은 나다. 뒤늦게 미국와서 학위한다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미국 이곳 저곳에서 ‘공순이’도 마다하고 견마지로를 다한 아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한참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랄 어린 나이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우리 두 딸들.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얼핏 불공평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이차피 세상은 불공평한 것 아니던가. ‘부르스 리는 부르스 리고 나는 나의 정한 바에 따라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니 단순히 용모가 조금 닮았다고 해서 그와 비교할 일이 아니다. 같은 과일이지만 우리는 사과와 오렌지다.’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토록 잘 나가던 부르스 리가 영화 촬영차 홍콩에 머물던 중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의문의 돌연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죽음과 사인을 둘러싸고 논란도 많았다. 조금 더 알아 보니 일찍이 격투기 시합 결승전때 상대방의 발차기에 전신 마비가 된 후 회복되었던 일도 있고 1970년 <용쟁호투, enter the dragon> 더빙 작업 도중 갑자기 쓰러져 전신 발작과 뇌부종으로 병원 에 실려가 기사회생한 일도 있었다. 이 증상들은 그가 사망한 날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부르스 리의 요절의 싹이 그의 무술이었음은 자명한 사실이고 그의 무도와 예능의 길이 내가 처음 성급히 생각한대로 순탄하고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짧고 굵게 살다 간 부르스 리가 부럽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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