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맛과 멋] 세도나의 성십자가 성당
이영주 / 수필가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도나를 2월 중순에 다녀왔다. 피닉스에 도착했을 때부터 야자수 가로수는 물론 다양한 선인장군으로 만든 독특한 정원들이 꼭 외국여행 나온 것같아 마음이 붕붕 들떴다. 피닉스에 거처를 정하고 피닉스 시내며 인근 도시 투산도 구경한 후 세도나로 떠났다. 피닉스에서 세도나로 가는 길은 산 위에 팔을 벌리고 우뚝 우뚝 서 있는 세구아로(Seguaro) 선인장 때문에 풍광이 여간 낯설지 않았다. 세구아로 선인장은 키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높이가 다양하다. 우뚝 선 굵은 몸통이 동네 입구에 서 있는 장승 같기도 하고 손가락 같기도 해서 그 다양한 손가락들이 희한하다. 그런 녀석들이 두 팔을 벌리고 산에 군데군데 서 있으니 마치 우리를 환영하러 나온 사열대 같다. 펼쳐지는 사막에선 같은 선인장군인 조슈아 트리(Joshua tree)가 양탄자처럼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사이 세구아로들이 서 있다. 두 시간 걸리는 세도나 가는 길이 세구아로 덕분에 지루할 새가 없었다.
벨록(Bell rock)은 세도나의 얼굴이다. 붉은 사암들이 크고 작게 솟아 있는 산들 사이에서 거대한 종 모양의 붉은 색 벨록의 위용은 가까이서 보니 더욱 웅장했다. 우리는 벨록만 탐색하기로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이 가파르지 않고 평지가 많아서 오르기는 수월했다. 삼분의 이쯤 올라가니 종의 마지막 부분 꼭지 부분이라서 바위도 날카로워지고, 길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날은 덥고 그늘도 없는 바위뿐이니 포기하고 내려왔다. 뉴욕의 산처럼 산을 에둘러 만들어진 평평한 길을 걷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나 보다. 사실은 붉은 산의 미혹에 취해 길을 잃은 사실도 첨엔 몰랐다. 힘은 좀 들었지만, 벨록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아오는 길이 더없이 즐거웠다.
바위 위에 아주 조그맣게 십자가 모양으로 지어진 앙증맞은 성십자성당(Chapel of the Holy Cross)은 세도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이 성당은 1956년에 완공되었는데, 2007년에 애리조나주의 7대 건축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1957년에 미국 건축가상을 수상했을 만큼, 미니멀하면서도 매우 매력적인 건축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한쪽 귀퉁이에 앉아 기도를 올렸다. 몸에서 저절로 전율이 느껴지면서 아지 못할 감동이 활발하게 숨쉬기 시작했다.
벨록 턱밑까지 수많은 상가들이 점령하고 있는 세도나는 절 안마당까지 요식업체가 들어선 한국 풍경과 오버랩되어 거부감이 느껴졌다. 볼텍스는 어느 지정된 장소가 아니라 그냥 세도나 자체가 그런 영험한 기가 넘치는 곳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뉴욕의 캣츠킬 산들에서, 광주의 송광사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더군다나 명상을 하며 특별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기운이 계속 우리를 휩싸고 있음은 느낄 수 있었다. 세도나에서 받고 싶었던 소원이 그렇게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친구는 내게 세도나의 붉은 사암에 십자가를 붙인 돌십자가를 선물로 사줬다. 작은 돌십자가가 세도나의 영험을 한순간에 폭탄처럼 전해준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라.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빨리 가려거든 직선으로 가라.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는 유명한 인디언의 속담이 내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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