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귓불 이야기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나는 사람들의 몸짓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인의 신체언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외국에 나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를 강의할 때도 한국인의 몸짓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많다. 손짓발짓으로 이루어지는 강의여서 서툰 영어여도 호응이 좋다. 그야말로 박장대소다. 깜짝 놀라는 표정도 자주 목격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몸짓이 바로 뜨거울 때 귓불을 잡는 행위이다.
뜨거운 것을 잡았을 때 우리는 깜짝 놀라 엄지와 검지로 귓불을 잡는다. 귓불이 신체 부위 중에서는 비교적 차가운 부위여서 손가락이 좀 시원해지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뜨거울 때 귓불을 잡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귓불이 신체에서 가장 차가운 부분이냐고 나에게 되묻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신체언어도 문화니까 그냥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궁색한 답이지만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더 공부해야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손이 뜨거우면 그냥 손을 털거나 '호호'하고 입으로 분다. 어쩌면 이런 행위가 더 일리가 있고 당연한 행위로 보인다. 뜨거우면 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찬물에 손을 담그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다양한 해결책이 있다. 아무래도 귓불을 잡는 것은 미스터리다. 왜 그렇게 할까? 즐거운 궁금증이 생긴다.
신체언어는 문화적이어서 언어보다 변화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많은 신체언어는 세대와 세대를 건너왔다. 그것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뜨거우면 귓불을 잡으라고 누가 가르쳐 줬는가? 답답하면 가슴을 치라고 누가 가르쳐 줬는가? 불쌍하거나 한심할 때 혀를 차라고는 어디에서 배웠는가?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신체언어의 기원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가르쳐 주었다면 왜 그랬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세상이 빨리 돌아가기는 가나 보다. 신체언어에도 외래의 신체언어가 들어오고 있고, 새로운 신체언어가 생겨나고 있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모르겠다는 표시를 하는 것은 서양에서 들어온 몸짓이다. OK를 나타내는 손짓도 당연히 외국에서 들어왔다. 우리말에 오케이가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윙크도 마찬가지다. 옛사람이 윙크를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새롭게 생기는 몸짓도 급속도로 늘어난다. 잠깐 한 눈 팔면 쫓아가기 어렵다. 손을 사과 모양으로 만들어서 하트를 표시하는 일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 이제는 머리 위로 크게 하트를 만들기도 하고, 엄지와 검지만으로 귀여운 하트를 만들기도 한다. 다 최근에 생긴 몸짓들이다. 반대로 많은 몸짓들이 사라져 간다. 최근에는 땅을 치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땅을 칠 일은 많지만.
아이들과 식사를 하다가 뜨거운 것을 잡고 놀랐을 때 하는 몸짓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은 귓불을 잡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나는 아이가 그걸 모른다는 사실에 더 깜짝 놀랐다. 신체언어가 변해 간다. 이제는 몸짓으로도 어른과 아이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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