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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리타이어' 남편의 뒷모습

남편과 딸은 캐나다로 여행을 간다. 남편의 뒷모습은 예전 같이 탄탄해 보이지 않는다. 이른 리타이어인가 했는데 잘했다 싶다.

아이들이 대학을 모두 졸업하면 리타이어를 하겠다던 남편은 지난주에 꿈을 이루었다. 지금 남편과 딸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대리 만족을 한다. 딸과 추억 만들기를 하는 남편이 고맙다.

내 어릴 때 아버지는 한결같이 안방 벽을 보고 누워계셨기에 여행은커녕 누운 뒷모습 밖에 볼 수 없었다. 철이 들어가면서 엄마가 지고 가는 살림 무게만큼 아버지를 탐탁지 않아 했고 심지어 미움이 있었던 것 같다. 농사일, 삼남매 뒷바라지, 미국 정착의 어려움까지 홀로 고민하는 엄마를 봐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문득 그립다. '병환으로 오래 누워 계실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라고 이해하며 아버지도 나름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항상 집에 계셨기에 우리에게 텅 빈 집의 허전함과 아버지 없는 설움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아버지는 엄마의 어깨를 누르는 짐처럼 느꼈었는데,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근래에 알게 됐다. 자신만만하던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로워 보인다.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1년을 양로병원에 맡겼던 것마저 후회하신다.

나는 남편이 '리타이어'라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남편의 삼시세끼부터, 하루 24시간 함께 지내게 된다면 나만의 여유와 자유가 없을 거라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자기는 홀가분한 리타이어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보다 힘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교까지 되면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순간, 요즘 아버지들 세상살이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기본 의식주 해결하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진 세상살이다. 자녀들은 예전처럼 학교성적만으로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고 예능과 봉사활동 등 갖추어야 할 것이 많다. 그것뿐이랴 컴퓨터, 핸드폰 등등 문명기기 들이 유혹하는 것과 어느 정도 발맞추려니 집안 경제 조달부터 아내와의 역할분담까지 벅찬 시대에 살고 있다. 들볶이는 세상살이에 나이는 한 살 두 살 더해가고, 머리는 백발에 숱은 줄고, 다른 곳은 여위어가는데 늘어나는 것은 뱃살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 편히 운동도 하고 자기만의 재미도 찾으며 자신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다.

가만히만 계셔도 제 역할을 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남편은 퍽 많은 일을 했다. 청춘과 열정을 바쳐서 일하느라 모습은 변했지만, 덕분에 당당하게 자라준 딸, 분신을 대동하고 가는 남편의 뒷모습은 쓸쓸하지 않다.

잃는 것이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얻은 것도 있는 세상살이다. 세상에 살고 계시거나 돌아가셨거나 모든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정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잘 돌아가고, 나름대로 잘 살고 있음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


김하영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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