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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인생 불변의 법칙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체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껴서다. 덕분에 집안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 살다 보니 이런 한가진 날도 오는구나.” 행복감에 젖다가도, 이러다가 나이가 더 들면 온종일 책상에 들러붙어 아예 붙박이장처럼 혼자 지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의 결핍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삐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나이가 되고 보니, 또래 친구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육체적 늙음만으로도 삶에 허무감이 독감처럼 달라붙는데 친구들까지 점점 줄어지니 사는 일에 흥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밥줄이 걸린 일도 아닌데, 사람을 만나려고 일부러 밖으로만 돌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우울증을 앓는 노인이 의외로 많다. 노인들이 앓는 우울은 ‘노인성 우울증’으로 따로 구분한다. 젊은이의 우울증은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기력하고 우울한 감정이 주된 증상이지만, 노년기의 우울증은 몸의 여기저기가 이유 없이 아픈 신체 증상까지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지력이 감퇴하고 행동 장애까지 동반하는 경우도 있어서 치매나 정신질환으로 오해받는 일도 생기니 참 심각한 일이다.

노인들과 지내다 보면 삶을 대하는 노인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된다. 속마음을 감추고 남의 행동거지만 관찰하는 사람, 신세 한탄에 몇 마디 하다가 눈물 바람을 하는 사람, 남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혼자서 방에만 머무르는 사람, 자신의 늙음을 탓하며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 희망도 즐거움도 없는 상태라면 차라리 이성까지 마비가 되면 좋을 텐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속 불만은 결국, 신체의 여러 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반면에 나이에 따른 경험을 통해서 삶의 이치를 터득한 지혜로운 노인의 삶은 다르다. 육체적 쇠락에 불만을 느끼거나 소외감에 연연하지 않는다. 현재를 인정하고 즐기며 산다. 주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이해하고 무엇이 남을 불쾌하게 하는지, 어떤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확고한 사고방식으로 현실을 판단하고 받아들인다. 마음이 건강한 노인이란 증거다.

일을 마치고 운동복 반바지로 갈아입은 내 모습을 본 할머니 한 분이 “ 나도 젊어선 다리가 저렇게 통통했었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젊다고?” 속웃음이 터졌다. 그렇지.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회의가 생기는 법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젊은 사람과 만남이 부담스러웠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는 내 현실을 젊은 사람과 비교하고 있다는 증거였구나. 늙는다는 거, 그게 바로 ‘은메달의 딜레마’ 같은 걸까?

미국 코넬대학 심리학과 연구팀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감정을 분석 연구했었다. 그 결과, 금메달리스트의 행복 점수는 물론 절정이었고, 동메달리스트 역시 절정에 가까웠지만, 은메달리스트는 절반 정도밖에 안 되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은메달을 탄 사람은 자신의 실수로 놓쳤다는 생각에 금메달을 아쉬워했기 때문이라는 결과였다.

인간사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서 죽는다.’는 이 법칙을 거스르면 많은 사람의 인생에 한을 남긴다. 먼저 간 아들을 마음에 품고 사는 어머니, 차 사고로 남편을 불시에 떠나보낸 아내, 갑작스러운 병으로 동생을 잃은 누이, 그 모두가 늙어보지도 못하고 떠난 사람들 때문에 서글퍼진 삶이다.

'늙는다는 건 젊다는 것만큼이나 아름답고 성스러운 일이다.“하고 헤르만 헤세가 썼다. 맞다. 지금 내 모습은 볼품없이 늙었고, 내 인생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지금 살아 숨을 쉰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다. 그래서 늙음은 거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잘 다듬으면서 함께 가야 한다. 이 또한 ‘인생 불변의 법칙’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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