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길(la strada)
영화 같은 당신의 인생. 그 가운데 한 컷의 명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돌이켜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느 장면을 떠올리겠는가? 잠시, 읽는 것을 중단하고 살아온 나날을 스치듯 돌아보라는 주문은 무리일까? 나는, 이런 감정의 유희를 좋아한다. 며칠 전 지인들과 대화 중 극적인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영화로 이어졌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명장면 해변의 춤,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혼을 울리는 배경음악이 깔린 먼지 날리는 사막의 '석양의 건맨', 왕가위 감독의 '화영연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 등 각자 돌아가며 감동의 영화 이야기를 회상해보며 즐거웠다.명작은 시간 속에 사라지지 않는다. 내면을 흔든 긴 울림은 기억의 지문이 되어 가슴속에 남는다. 간혹, 그 옛 파장을 펼쳐내어 그 속에 빠져보는 감정의 유희는 짜릿하다. 잠시 혼을 어디론가 끌고가는 영상의 전율 속에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느끼고, 생각하고 끝내는 세상사람 속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근원적 의식의 확장, 그것이 예술의 힘인가보다.
센티멘탈한 감성의 소유자인 나는 혼자 영화관 구석에 앉아있던 시간이 가장 편했던 기억이다. 사춘기 소녀시절 '길'이라는 영화제목을 보고 이유도 알 수 없는 막연한 노마드의 향수에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돼 '길'이란 이 영화의 제목은 어떻게든 살아내어야하는 생의 여정과 중첩되어 또 다른 의미가 되어 무게롭게 다가온다.
지인들이 돌아간 밤, 나는 오랜 흑백영화를 다시 한 번 돌려보았다. 시인이자 화가이며 배우였던 안소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의 명연기, 무엇보다 니노로타의 내부를 뒤흔드는 트럼펫 소리의 슬픈 여운은 길다. 사연 많은 인생 고개를 넘어가는 한의 가락 아리랑을 이태리 음조로 듣는 듯하다. 백치, 그러나 순수한 영혼의 젤소미나가 돈에 팔려 유랑극단의 거칠고 냉소적인 차력사 잠파노를 따라나서며 전개되는 인간의 고독을 그린 영화다. 회자되는 라스트 신은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해안으로 찾아가 후회와 통한에 젖어 모래를 움켜주며 절규하며 울부짖는 잠파노(안소니 퀸)의 모습으로 먹먹하게 끝난다. 시대와 배경이 달라졌을 뿐 통제된 인간 내면의 타인과의 단절속에 인간의 고독감은 더욱 심화되는 이시대, 이 영화의 울림은 아직,아니 영원히 진행형일것이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 소중한 줄 몰랐던, 각자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일상의 작은 존재, 시간, 사람, 그 누구, 그 어떤 것, 항상 곁에 있어 당연한, 그러나 어느 날 그 것이 사라졌을 때 부재의 공허 속에 진정한 자신의 삶의 의미이었던 상실의 아픔, 그리움의 통한, 때 늦은 후회를 그려낸 영화'길'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슬픈 오마주다. 그렇다. 느리게 펼쳐지는 삶이라는 끝없는 길 위의 우리의 여정은 녹록치 않다. 밥벌이의 지겨움, 세월가며 육신에 내려앉는 저녁노을의 서글픔, 때론, 예상치 못한 이별, 삶은 비루하고 험난한 길의 여정이다. 그러나, 숨을 고르고 돌아보면 창문에 내리는 새벽 빗 소리, 나뭇잎 사이를 뚫고 방까지 들어온 명랑한 아침햇살, 버터냄새 고소한 빵과 커피, 밤하늘의 별, 달, 책, 시와 음악… 아릴 수 없이 황홀함이 넘치는 이 세상 아닌가. 무엇보다 이름만 떠올려도 따뜻한 가슴에 품은 사람이 있는 한, 이 긴 헤생의 여정은 걸어갈만 하지 않은가. 후회하지 말고, 지금, 나무에게, 바람에게, 들녘에…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자.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생의 여행길로 설렘의 발길을 옮기자.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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