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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베슬에 오르다

멀리 사는 친지나 친구가 뉴욕을 방문하면 그들에게 보여주는 몇 가지 명물이 있다. 가까이는 자유의 여신상과 멀게는 나이애가라 폭포와 천섬. 물론 브로드웨이 밤거리와 뉴욕을 살아 숨쉬게 하는 공연과 전시회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새로 오픈한 허드슨 강변 대형 도시재개발 사업 '허드슨 야드'에 선보인 뉴욕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베슬(Vessel)까지. 베슬은 2500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는 작은 건물이랄까, 외관은 항아리 형태로 내부는 층마다 계단이 얽히고설킨 벌집을 연상시켰다. 계단 모양이 마치 사람의 혈관처럼 얽히고 뻗어나가 베슬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느 평론가는 "쓰레기통"이라고 평하기도 했지만 당분간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 같다.

며칠 전 동창들과 함께 허드슨 야드로 나들이를 나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베슬에 마치 사람들이 벌처럼 왔다갔다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높이와 다른 각도에서 맨해튼의 조망을 볼 수 있고 허드슨 강으로 지는 석양을 볼 수 있다니 뉴욕을 찾은 관광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된 셈이다. 맞은편 백화점 건물 안에는 고가의 명품부터 중저가의 의류와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숍들이 들어와 있었다.

먹거리도 비싼 레스토랑부터 조리된 음식을 파는 체인점까지 다양했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점심을 하며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화는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로 건너뛰고 있었다. '며칠 앓아 보니 갈 때는 한 번에 갔으면 좋겠어.' '노인들, 곡기 끊으면 편안히 갈 수 있대.' 살기 위한 밥상을 앞에 놓고 쉽게 가는 법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혼자 남으면 큰 집은 어떡해!' '그러게. 지하실에 간 남편 조금만 늦게 올라와도 가슴이 철렁해.' 편히 갔으면 좋겠다면서 아직 오지 않은 근심에 엄살을 부리기도 했다.

금융위기가 다시 올 지 모른다는 염려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화제는 제멋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비싼 임대료로 수익을 낼 수 있을까부터 그러기에는 주변의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걱정 아닌 걱정까지. 걱정은 근심을 낳고 근심은 두통을 키운다. 그러니 마지막 말은 항상 '그저 아프지 않는 게 상책이야!'다. 아프지 않고 산다는 것, 중요한 이슈이긴 하나 건강만 챙기며 살다 보면 삶이 너무 건조해지지 않을까 혼자 되물어 보았다.

오후 햇빛을 받으며 우리도 베슬로 올라갔다. 8~9층 높이의 끝에 올라서니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허드슨 강 줄기를 따라 사진을 찍고 그리고는 내려와야 했다. 무릎이 안 좋은 친구는 이렇게 또 내려갈 거면 차라리 올라오지 말 걸 그랬다며 불평했지만 우리 삶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려와야 함을 알지만 때로는 힘들게 올라가야 하고, 내려가면 반드시 또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것. 베슬은 '목적지 없는 계단'은 아닌지, 마치 우리 삶의 계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혜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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