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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나의 묘비명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이라는 시가 있다.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내겐 죽기 전에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내 자신의 묘비명을 쓰는 일이다. 묘비명이란 묘비에 새긴 명문(銘文)이나 시문을 말한다. 생전에 고인이 추구했던 인생철학을 묘비에 새겨 추모하는 글이다. 비유하자면 묘비명은 산 자들이 죽은 자에게 주는 인생성적표다.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은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반면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간 사람들은 공개하기조차 부끄러운 점수를 받게 된다.

묘비명은 그가 최상의 삶을 살았다는 증명서다. 묘비명을 자신이 직접 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꼽을 수 있겠다. 칸트는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해 유한한 인간 세상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별들이 사람들을 이 세상 너머의 세계로 높이 인도하고 이들로 하여금 정적 속에서 어떤 이름할 수 없는 소리를 듣게 지 않는가.” 칸트의 묘비명은 그의 이런 사상을 집약한 것이다.

“곰곰이 거듭 생각할수록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할수록 점점 새롭고 더욱 더 커지는 경탄과 경외로 마음이 채워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위의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률이다.”

이것은 그의 주저의 하나인 <실천이성비판> 의 유명한 마지막 결론에서 나오는 말이다. 칸트는 우주의 신비만큼이나 놀라운 것이 인간의 마음속에도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것이 도덕률이다. 우주에서 듣는 ‘이름 할 수 없는 소리’. 그가 ‘자기 안에서의 소리’라고 부른 도덕성의 반향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묘비명의 메시지에 공감하게 된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탄과 함께 마음을 가득 차게 하는 두 가지 기쁨이 있다. 하나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이 두 가지를 삶의 지침으로 삼고 나아갈 때, 막힘이 없을 것이다. 항상 하늘과 도덕률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자. 그리하여 매번 잘못된 점을 찾아 반성하는 사람이 되자.

묘비가 세워진다는 확신은 없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한번쯤 ‘내 묘비명은 무엇이 될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저마다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묘비명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총체이자 기억이다.

선인들의 묘비명엔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자책하거나 겸손해하는 내용이 많다.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목은 86세 때 130 글자의 자명비(自銘碑)에서 “말은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행한 것은 말과 일치하지 못했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물론 선현이라고 해서 언행일치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선인들이라면 이미 무덤에 들어갔을 나이에 다시 환갑의 나이만큼을 덤으로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 후세에 남길 엄두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캄캄한 밤길을 지팡이를 두드려 가며 걷는 듯이 살다가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게 보편적인 우리네 인생이다.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이 마땅히 맑아야 하니 맑지 못함이 있다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용모는 마땅히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함이 있으면 곧바로 엄숙하게 해야 한다.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 하니 말이 많다면 그치도록 해야 한다. 동작은 마땅히 후중(厚重)하게 해야 하니 후중하지 못하면 곧바로 더디게 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명문가의 고위관료가 반대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남녘의 궁벽한 곳에 유배오고도 그들을 원망하거나 신세를 한탄하여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생각과 용모, 언어와 행동에서 의로움에 합당하도록 살겠다는 그의 다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어떠한 굴욕과 탄압 속에서도 마음만은 자유를 만끽하며 금욕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산의 당당한 태도에 고개가 숙여진다.

“털려고 하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이더라.”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역전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쓰러지면 쓰러진 채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그는 불굴의 날갯짓을 했다. 결국, 그는 새장을 뚫고 날아올랐고, 적들보다 훨씬 더 높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랐다. 정약용은 그렇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천하가 불의로 신음하고 있다. <포박자(抱朴子)> 는 “진실과 허위가 뒤바뀌고 보옥과 돌멩이가 뒤섞인다. 그래서 이 때문에 슬퍼한다”고 했다. 나도 슬퍼한다. 시대에 대한 불편한 심사를 달래며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에서 한 구절 따내 내 묘지명을 이렇게 지으면 어떨까 싶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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