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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인조인간과 현대미술

2020년의 3월과 4월은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 날마다 엄청난 사망자를 기록하는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세계의 여러 미술관과 콘서트홀은 각종 전시와 공연을 동영상이나 가상현실로 올려 시민들에게 작은 위안을 선사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화상회의와 원격강의를 경험하게 돼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인간과 기계가 어울려 사는 세상이 멀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렇다면 미술작가들은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어떤 모습으로 꿈꾸고 표현해 왔을까? 그들의 예술적 상상력은 ‘인조인간’이라는 키워드로 따라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불, ‘사이보그W5’(199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2020

이불, ‘사이보그W5’(199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2020

고대부터 사람들은 인조인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아를 만들고 그녀에게 숨을 불어 넣어 생명체를 창조하였다. 피그말리온 전설은 중세 기독교인들에게 이교도적인 메시지였지만, 르네상스로 나아가는 중세 말기에는 삽화나 조각으로 자주 표현된 주제였다. 이밖에 1495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동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갑옷 입은 인조인간의 디자인을 드로잉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인간은 진짜 인조 ‘인간’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정교한 과학 기구와 탁상시계는 무수히 제작되었다. 19세기 초반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오늘날의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의학 실험의 실패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 인조인간이 등장한다. 이어 20세기로 들어서면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나무꾼과 같은 ‘로봇’이 등장한다. ‘로봇’이라는 말은 슬로베키아어로 일 혹은 노동이라는 뜻의 ‘로보타(robota)’에서 연유되었다. 슬로베키아에서 잠시 살았던 체코 작가 카렐 체펙(Karel Capek)의 연극에서 처음 사용된 후 여러 예술 영역에서 인간들의 힘든 노동을 대신해 주는 상상의 존재로 출연한다. 채펙과 동시대의 감독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에는 마리아 흉내를 내는 여자 모습을 한 ‘기계-인간(machine-human)’이 등장한다.

산업혁명 이후로 급속한 발전을 보인 과학기술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사람들은 두려움도 느꼈다. 20세기 들어 이탈리아 미래주의(Futurism)의 작가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의 조각 ‘공간에서의 독특한 연속체(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1913년)’에서는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인체 근육이 두드러진 형태를 볼 수 있다. 보치오니 자신은 본인의 작품을 로봇이나 인조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20세기의 장난감이나 만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로봇들의 어깨나 가슴, 종아리 등은 누가 봐도 보치오니의 청동조각과 많이 닮아있다. 2차대전 이후에는 컴퓨터의 개발과 함께 인공지능이 등장했고, 공장에서 일하는 조립 로봇 등이 개발되었다. 이렇게 고대로부터 인간들이 상상해왔던 사람의 일을 대신해주는 인조인간은 아직도 그 발달이 진행 중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 출신 백남준 작가는 ‘TV 로봇’ 시리즈를 선보였다. 튜브형 텔레비전을 가로와 세로로 적절히 배치해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가 있는 로봇 형상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한국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 이불은 1990년대부터 여성스러운 기계 인체를 만들어 ‘사이보그’ 시리즈라고 불렀다. 잘록한 허리와 볼록한 가슴,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하얀색 실리콘 재질의 사이보그는 여성의 신체처럼 보이지만 기계로 제작된 인조인간이다. 나사가 무수히 박힌 갑옷 같은 보호복을 입고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능적인 다리를 가진 사이보그는 그러나 한쪽 팔이나 한쪽 다리가 없다. 인간과 인조인간이 함께 협력해야만 완성체가 되듯이 이불의 사이보그도 작품 두 개가 합체를 이루어야 비로소 제구실을 할 것 같이 불안정하다. 영국 출신의 매트 콜리쇼(Mat Collishaw)는 눈까지 깜박거리는 ‘젊음의 마스크(The Mask of Youth·2018년)’ 인조 두상을 만들어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로봇 에세이’ 전시에서는 로봇 공학의 기계적 가능성을 심미적 문제의식으로 접근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드물지만 몇몇 현대미술작가들은 본인의 몸에 기계장치를 더하여 사이보그 아트를 몸소 실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기계적 기관을 이식한 채로 살아가는 사이보그형 인간, 혹은 완전히 인공적인 인조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한다. 이들은 2020년 아름다운 봄날 미생물에 대항하여 종족의 보존을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싸우는 인류를 위해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인조인간과 자연적 생명체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꿈꾸며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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