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김소월 시의 한 부분입니다. 말과 생각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애틋한 시입니다. 말보다 생각이 먼저 머리와 가슴에 다가옵니다. 말을 떠올리는 순간 감정이 쓸려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가끔은 그립다는 말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생각지도 않았던 그리운 일이 먼저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리운 일이 떠올랐을 때 입가에 미소라도 띄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어쩌면 눈시울이 괜히 뜨거워질 수도 있을 겁니다.예전 일을 생각해 보면서 어떤 일이 좋았고, 어떤 일이 힘들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일이 기뻤고, 어떤 일이 슬펐는지 떠올려 봅니다. 그리운 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가서는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저의 경우를 보니 지금 내가 힘들수록 과거의 힘든 기억은 잘 안 나는 것 같습니다. 힘이 들 때는 지난날의 좋은 기억, 만나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어려웠던 시절이나 만나기 싫은 사람이 생각나면 더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가까운 분께 살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힘든 기억을 괜히 꺼내는 것은 아닌지 주저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분들이 힘들었던 때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드리자 그때야 맞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아팠던 기억, 배신당했던 기억, 가족이나 친구가 힘들어했던 일,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난 일 등. 예를 들지 말 걸 그랬습니다.
살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저 깊이 파묻혀있다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지만, 자꾸 떠올려 괴로울 이유도 없습니다. 조금은 멀리 떨어뜨려 놓고, 바라보면서 나를 돌아볼 뿐입니다. 약간은 가슴이 아리기도 할 겁니다. 그때의 힘든 기억이 다시 돋아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괴로움을 딛고 서 있는 지금이 더 고마워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힘든 기억은 단기기억으로 보내고, 좋은 기억은 장기기억에 남겨 두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행복한 기억을 가까이에 두고 싶습니다. 자꾸 생각이 나서 괜히 미소 지을 수 있게 말입니다.
그립다는 말은 ‘그리다’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그리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게 그리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일 겁니다. 원래는 눈앞에 보이게 그리는 일이었는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그리워하는 것은 분명 추상적인 행위이지만, 생각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손으로 그린 그림보다 마음으로 그리워한 것이 더 간절하고 구체적인 느낌일 수 있습니다. 그리움에는 감정이 한 가득합니다.
그리워도 못 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이 계속 이어져 가지는 않겠죠.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합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민족 최대의 명절에도 서로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가까운 이가 결혼을 해도, 누가 세상을 떠나도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아픈 가족을 지켜주기도 어렵습니다. 그립습니다. 사람이 그립고, 따뜻했던 만남이 그립습니다. 그립다고 말을 할까 하니 그립습니다. 소월은 그리움을 시 속에 감정으로만 남겨두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움을 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전화를 걸어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평상시보다 훨씬 자주 목소리를 듣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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