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칼럼] 아날로그 감성 타고 돌아온 LP판

호기심이 강해서 전곡을 다 듣기보다는 조금씩 이것저것 다양하게 틀어봤던 것 같다. 한국 민요, 가요를 비롯해 외국 음반들이 꽤 많았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1960년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다. ‘삼각지 로-타리에~’로 시작되는 멜로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초등생이 돼서도 선친이 애지중지하던 테크닉스 리시버 앰프와 턴테이블, 마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듣기를 즐겼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처음 들었을 때 온몸으로 느꼈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후 클래식과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됐고 클래식 음악 전문 월간지를 창간호부터 구독하기 시작했다.
1979년 카세트 워크맨의 등장과 함께 간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수년 뒤 잡음 하나 없이 생동감 넘치는 음악을 들려주는 콤팩트디스크(CD)가 출시되면서 자연스레 LP판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음반계도 음질을 앞세워 CD 발매에 주력하면서 LP판은 점점 추억 속으로 멀어져 갔다. 일부 마니아들만이 명맥을 유지해 갔을 뿐 LP판은 거라지 세일에서도 잘 팔리지 않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코로나 사태로 재택시간이 늘어나면서 LP판이 다시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수년 전부터 디지털 문화에 식상한 나머지 ‘아날로그로의 회귀’ 바람이 불며 디지털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가, CD나 MP3 대신 LP판 등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일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년 전 우연히 빈티지 LP판들을 몇 장 얻은 후로 턴테이블을 하나 장만하고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2019년 연말 쇼핑 시즌에도 텐테이블 핫딜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꽤 쓸만한 브랜드 제품을 200달러 전후에 구할 수 있었지만 ‘핫딜은 돌고 돈다’는 생각에 구매를 미뤘던 것이 후회막급이다. 지난해 LP판 인기가 치솟으면서 턴테이블까지 몸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미국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LP판매량이 1986년 이후 처음으로 CD판매량을 추월했다. 지난해 LP 판매 규모는 전년 대비 28.7%가 증가한 6억2600만 달러를 기록한 반면 CD는 23%가 감소한 4억8300만 달러에 그쳤다.
유명 뮤지션들은 물론 제작사들이 LP판을 속속 출시하고 일부 앨범은 프리미엄까지 붙어 판매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중고 LP판 시장에도 반영돼 거라지 세일에서의 가격이 장당 3~5달러로 크게 올랐다.
턴테이블 역시 인기 제품들은 온라인에서 품절 또는 백오더이기 십상이고 아마존에서 250달러 하던 제품이 450달러 이상에 판매될 정도로 인기몰이하고 있다.
4개월 가까이 기다린 끝에 최근 턴테이블을 장만할 수 있었다. 30년 된 앰프에 연결해 중고등학교 때 즐겨 들었던 클래식 음반을 올려놓고 헤드셸을 조심스레 내려놨다. LP판만이 가진 틱틱 거리는 잡음과 함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깔끔하고 청명한 CD와 음질을 비교할 순 없지만 잠자던 감성을 자극하며 돌고 있는 LP판을 바라보니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힐링이 되는 것을 느꼈다.
수천 명의 음악 애호가들이 몰려든 가운데 미국 최대 규모의 레코드매장 아메바 뮤직이 코로나로 영업을 중단한 지 1년 만에 지난 1일 할리우드에서 재개장했다. 그들 역시 코로나 사태로 시달린 몸과 마음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힐링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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