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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심훈 선생 아들 심재호 선생 별세

7일 오전 버지니아주 알링턴서 별세
향년 85세..생전 동포 언론인 족적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심훈(1901~1936)의 셋째아들 심재호 선생(사진)이 7일 오전 11시45분경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 심재호 선생 삶의 궤적은 또 다른 심훈이었다. 아버지 심훈이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한 것처럼, 심재호 선생도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1974년 도미, 미주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에는 일간뉴욕을 창간해 13년간 편집국장 겸 발행인을 맡았다.

아버지 세대의 소원이 ‘해방’이었다면 아들세대의 시대적 요청은 남과 북의 ‘통일’이었다. 심재호 선생은 1988년 ‘뉴욕 이산가족 찾기 후원회’를 조직해 1000여 명의 남북 해외 이산가족을 찾아주었다. 1990년에는 남북영화제를 개최했다. 당시 심재호 선생은 “정치와 사상, 이념이 가로막고 있을 뿐 남과 북의 사람들의 정신은 실핏줄까지 이어져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고 심재호 선생은 아버지 심훈의 육필원고 등 유품을 찾고 정리하는 데 힘썼다. 영화 ‘먼동이 틀 때’ 극본과 제작 시나리오 원본, 시 ‘그날이 오면’의 일제총독부 검열본 등 4500매 육필원고는 모두 심재호 선생의 손에 의해 복원됐다. 페어팩스에서 3.1절 기념 심훈 육필원고 전시회도 개최했다.

고 심재호 선생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진행한다. 유족은 부인 설도섬씨와 1남 3녀, 손주 8명이 있다.
▷문의: 703-314-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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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심훈은 1901년 대한제국의 경기도 과천군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현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중국에서 망명하는 동안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1924년 돌아와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 식민지 현실을 다루는 영화를 집필 감독해 단성사에서 상영했다. 조선일보에서 ‘불사조’ 등 소설을 연재하다 일제의 게재 중지 조치로 연재를 중단하게 된다. 1935년 동아일보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장편소설을 공모했고, ‘상록수’로 당선 상금을 받은 심훈은 상록학원을 설립해 농촌 학생들의 교육을 도왔다. 상록수를 영화화 하고자 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좌절됐고, 집필에 몰두하던 중 1936년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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