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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베개

올여름이 뜨겁다.

며칠째 낮 기온이 100도를 웃돌고 밤에도 90도 선을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열 밤을 지나며 진땀을 흘리고 있다. 〔〈【서부 쪽은 110도 이상이라는데 어찌 견디는지 상상이 안 간다. 】〉〕종일 에어컨으로 낮더위를 피하고 있으나 밤에는 소음 때문에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놓아야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는데, 처음에는 차게 식혀진 방 공기 때문에 잠은 들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뒷덜미가 후끈한 느낌에 잠이 깨인다. 〔〈【얼굴에서는 더운 땀이 배어 나오고 머리도 땀으로 축축하다.】〉〕

다시 에어컨을 켰다가 끄고, 베게와 얇은 모포 하나를 들고 마루로 나왔다. 다시 잠을 청하지만 푹신한 베게는 난로처럼 덥다. 책장에서 두꺼운 책 몇 권을 쌓아 올려 베고 누었으나 그것도 편치 않다.

목침이 있었으면….

어릴 적 보았던 목침 생각이 난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 뒤창 열어 놓은 대청마루에 목침을 베고 낮잠을 주무시던 옛 어른들 생각이 난다. 나는 목침을 베어본 적이 없지만, 어른들은 손때 묻어 번들번들한 그 두꺼운 나무토막을 베고 달게 잠을 자던 모습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목침이 있다면 나도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옛날부터 대나무껍질로 얽어 만든 목침도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비닐 재질의 끈으로 엮어 만든 목침이 나와 한여름 불기 없는 방바닥 누런 장판 위에 뒹굴던 것도 기억이 난다.

베개 타박으로 몇 시간을 뒤척이며 갖가지 옛 베개들이떠오른다.

비단 실로 양쪽 면에 봉황이나, 한문으로 수(壽), 복(福) 자가 수 놓인 크고 네모난 아버지 베개, 꽃 자수나 갖가지 색깔의 천으로 별 모양이 누벼져 있던 어머니가 만든 우리 베개도 생각난다. 우리 자랄 때는 벼를 탈곡하면 나오는 왕겨로 베게 속을 넣었다. 이 왕겨 베갯속은 얼마 지나면 푹 꺼져서 새로 왕겨를 갈아주어야 한다. 어머니는 베갯속을 열어 부스러진 헌 왕겨를 쏟아버리고, 깨끗이 씻어서 말린 새 왕겨를 빵빵하게 채워서 어구리를 다시 꿰매었다. 그 위에 꽃 수가 놓인 베갯잇을 시침질하여 베개를 새로 단장하시곤 했다. 빨아서 풀 먹여 다림질한 흰 옥양목베갯잇을 씌운 베개를 베면 향긋한 밀가루 풀냄새도 맡아지고 얼굴에 닿는 고슬고슬하고 정갈한 느낌에 잠이 절로 들곤 했다. 그땐 거친 왕겨 베개로도 타박을 모르던 단잠이었다.

나도 베갯속에다 좁쌀을 넣어 얇은 아기 베개를 만들어 준비해 놓았으나, 얼마 사용하지 못하고 아기의 뒤통수를 살려준다는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폴리에스테르 베개에 밀려났다. 폴리에스테르솜은 가볍고 부드러우며 세탁이 용이한 참 유용한 섬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열을 받지 않는 목침이나 메밀껍질, 왕겨, 좁쌀 등 통풍이 되어 숨이 쉬어지는 자연 소재의 옛날 베개가 간절해진다.

간밤에 더위로 잠을 설친 다음 날, 나는 인터넷에 목침을 비롯한 여름 자연소재 베개를 찾아보았다. 오래 잊고 살았던 옛날 베개들을 보며 옛 시절을 추억한다. 내일은 한국 침구를 파는 가게에 가봐야겠다. 여름용 베개 하나쯤은 지금이라도 준비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아직 초여름인데 벌써 폭염으로 미대륙이 벌겋게 달궈지고 있으니, 올여름 지낼 생각에 바짝 긴장된다.


이경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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