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집이자 숲…BWAC 최우수 설치상 수상 한정희씨
브루클린 미술가 한정희(사진)씨가 ‘브루클린 워터프론트 미술가 연합’(BWAC, Brooklyn Waterfront Artists Coalition)이 주최하는 공모전 ‘와이드 오픈’에서 최우수 설치작품상을 수상했다.한씨는 습자지(tissue paper)로 만든 설치작(6x6x10ft) ‘종이 공간(Paper Space)’으로 이 상을 받았다. 이 공모전에는 1583명의 미술가가 응모해 이중 한씨 등 147명의 작품이 지난 13일부터 브루클린 레드훅의 BWAC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5200피트짜리 종이 롤 5개를 6cm 너비로 잘라 테이프와 스태플러를 사용해 빽빽하게 설치한 종이 공간. 한씨는 종이로 만든 집에 관람객을 초대한다.
“종이로 빽빽하게 가득 채워진 공간을 만들어서 관람객들의 감각 경험을 최대화시키고 싶었어요. 관람객이 안에 머무르면서 종이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진정한 이해의 기회를 갖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낯선 장소로 여행할 때 관광객의 눈·코·입·귀·몸 등 오감은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전시장의 관람객은 한씨가 마련한 일상적이지만 낯선 공간에서 문득 종이와, 자신과도 소통하게 된다.
종이 공간의 ‘자락’들이 움직이면서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공간을 마치 숲(forest)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종이는 사실 나무에서 온 것이 아닌가. 모국을 떠난 이민자도 낯선 장소에서 ‘종이 공간’ 같은 신드롬을 체험하게될 것이다.
한씨가 굳이 나무, 흙, 혼합재료가 아닌 선물 포장에 쓰이는 습자지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이는 가장 연약한 소재이자 소멸될 운명의 오브제다. 나무라는 생명체가 가공되어 한 미술가의 소재가 된다.
종이 공간은 관람객이 드나들 때마다 마모되고 찢겨지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결국 폐기되기 마련이다. 결국 한씨의 작품은 인간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처럼 생로병사의 섭리를 따라가게 된다.
종이 공간이 더 매혹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비록 연약한 벽의 장소이지만, 세파에 찌든 ‘광장’의 도시인들에게 ‘밀실’ 같은 포근함을 준다는 것 때문이다. 외부세계와 단절되었지만 동굴은 아니다.
핸드메이드의 종이 공간은 누구라도 잠시 머무르며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던져준다. 그러기에 한씨의 공간은 선(zen)적인 체험까지 가능케하는 장소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도예와 섬유예술을 복수 전공한 한씨는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을 거쳐 미시간주 크랜브룩아카데미오브아트에서 도예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7월 뉴욕으로 이주, 젊은 미술가들이 운집한 윌리엄스버그에서 살며 작업하고 있다.
BWAC은 1978년 미술가 16명이 모여 전시 공간을 찾기위해 결성된 비영리기구로 4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갤러리는 남북전쟁 당시 창고로 쓰던 2만5000스퀘어피트의 공간에 자리해 있다.
▶전시일정: 3월 13∼28일.
▶BWAC갤러리: 499 Van Brunt St. Red Hook, Brooklyn.
박숙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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