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이롭를 읽고] 목타는 차드의 아이들
안동철/충현선교교회 원로장로
그런 어머니의 물 긷기는 형수가 시집온 후 형수의 몫이 되었다. 시집오기 전 물 긷기를 못해 본 형수에게 가깝지도 않은 우물에서 무거운 오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 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형수의 물 긷기는 얼마 가지 않아 결국 큰 사고가 나고서야 끝났다. 그 사고 이후 아버지는 그 길로 앞마당을 파고 파이프를 묻어 펌프를 설치했다.
우리 마을이 개발되어 상하수도가 설치되기 전까지 약 30년간 펌프는 우리 식구의 생명 선이었다. 나는 그때 어려서 물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지는 못했어도 물을 길어 오시던 어머님과 형수님의 수고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생각한 것 같다.
금번에 5회에 걸친 중앙일보의 '목 타는 아프리카 차드를 가다'라는 기사는 나에게 두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천형과 같은 아프리카 땅의 참상을 읽고 가슴 아픈 일이 그 하나요 물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 다른 하나다.
그전이라고 아프리카의 참상을 못 듣고 물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을까 만은 이번 기사는 보다 생생한 아프리카의 참상을 직접 보는 듯 하게 했고 물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했다.
왜 맑고 아름다워야 할 아프리카 어린 아이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며 그들의 눈동자 속에 저리도 큰 슬픔이 가득한 것일까. '어느 때가 가장 슬프냐?'고 묻는다면 저들은 대답하겠지. '매일 슬퍼요'라고.
제 몸보다 큰 냄비를 이고 물 길러 가는 네 살 짜리 어린아이의 모습도 애처로운데 그 아이의 붓고 휘어진 발은 차마 볼 수 가 없다. 하루 세차례 15km나 되는 곳으로 물을 길러 간다는 까찌 마을의 어린소녀 아찌떼는 물 길러 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며 무어라 하는 것일까.'목 말라요 도와주세요.'
아버지는 일찍 죽고 엄마는 다른 남자를 따라 아이들 버리고 떠난 뒤 육남매를 맡아 키운다는 스무살 고모(하지아)의 두 어깨도 너무 무거워 보였다.
수도꼭지를 틀면 적당히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내 마음이 왜 이리도 편치 않을까. 먹을 물이 없어 오염된 호수의 구정물을 퍼 마시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나는 이 귀한 물을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마시고 썼을까. 미안한 마음에 작은 소리로 이렇게 다짐해본다. 정수된 맑은 물을 마시고 따뜻한 물로 목욕할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하자고. 그리고 흙탕물을 마시는 저들을 위해 '소망우물' 파주기 프로젝트에 적은 힘이나마 보태보자고.
오늘도 네 살 짜리 어린 아이는 저보다 큰 냄비를 이고 휘어진 발로 식구들이 먹을 강물을 뜨러 먼 길을 가고 있겠지. 아찌떼는 물 길러 그 먼길을 오늘도 다녀왔겠지. 아찌떼야 하우아야 힘 내거라.
▶중앙일보에 개재된 '목타는 아프리카 차드를 가다' 기사를 보고 독자가 후원금 100달러와 함께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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